솔직히 저는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을 때마다 콜레스테롤 수치만 들여다봤습니다. CRP라는 항목이 거기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은 숫자 하나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전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30년 가까운 연구 역사와 의학계의 복잡한 내막과 함께 뒤늦게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만성염증 이미지

hs-CRP 수치, 왜 30년째 묻혀 있었나

일반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야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관련 자료를 파고들면서 알게 된 사실은 꽤 달랐습니다. 콜레스테롤이 정상 범위인 사람도 혈관 속에서 조용히 만성 염증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감지할 수 있는 피검사 지표가 이미 30년 전에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지표가 바로 hs-CRP(고감도 C반응성 단백)입니다. 여기서 hs-CRP란, 혈액 속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날 때 간이 만들어내는 단백질 수치를 고감도로 측정한 값을 의미합니다. 정상 범위는 한국 기준 0.2mg/L 이하이며, 이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으면 혈관 어딘가에서 만성 염증이 진행 중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감기처럼 급성 감염이 생기면 수치가 10 이상으로 뻥 튀기도 하지만, 만성적으로 0.2를 넘는 상태는 결이 다릅니다.

하버드 의대 브리검 앤드 위민스 병원의 심혈관 센터장 폴 리드커(Paul Ridker) 박사는 1997년 약 3만 명의 여성을 추적한 연구를 통해 hs-CRP가 높은 사람에서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 비율이 4배 높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발표 무대는 의학계에서 빌보드 차트 1위에 비견되는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이었습니다(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08년에는 콜레스테롤이 정상이지만 hs-CRP가 2mg/L 이상인 1만 7,8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일명 '주피터(JUPITER) 연구'에서 로수바스타틴(rosuvastatin)을 투여한 그룹이 심근경색·뇌졸중 발생률을 50% 줄이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로수바스타틴이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스타틴 계열 약물로, 아스트라제네카의 브랜드명 크레스토(Crestor)로 알려진 약입니다. 콜레스테롤이 정상인 사람한테 콜레스테롤 약을 썼더니 심혈관 사건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결과는 당시 학회장을 뒤집어 놓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2017년에는 카나키누맙(canakinumab)이라는 면역 억제 항체 약물만으로도 같은 효과를 확인한 '칸토스(CANTOS) 연구'까지 나왔습니다. 카나키누맙이란 염증 신호 물질인 인터루킨-1 베타를 차단하는 생체의약품으로, 콜레스테롤과 전혀 무관하게 염증 경로만 억제합니다. 세 번에 걸친 대규모 연구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 셈입니다.

그런데 이 결과가 왜 30년 가까이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제가 자료를 보면서 가장 씁쓸했던 지점이 여기였습니다. 리드커 박사가 연구 초기에 hs-CRP 측정 행위 자체에 특허를 등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의사 그룹들이 연구 자체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퍼졌습니다. 심지어 NEJM 논문에 "이 연구는 쓰레기(trial was flawed)"라는 표현을 담은 비판 논문이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학회 가이드라인에도 hs-CRP는 여러 위험 지표 중 하나로 구석에만 언급됐고, FDA는 콜레스테롤이 정상인 사람에게 스타틴을 쓸 때 고혈압·당뇨·흡연 중 한 가지 이상의 위험인자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제약 회사 아스트라제네카도 특허 분쟁 분위기 속에서 hs-CRP 측정을 적극 홍보하지 않았고요.

상황이 바뀐 건 폴 리드커와 무관한 호주·네덜란드 연구팀이 독립적으로 콜히친(colchicine) 저용량 연구를 진행하면서입니다. 콜히친이란 통풍 치료에 주로 쓰이는 강력한 항염증 약물로, 이를 저용량으로 꾸준히 투여했을 때 심근경색·뇌졸중 사망률이 유의하게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콜히친 계열 약물 로도코(Lodoco)는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출처: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리드커와 이해관계가 없는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자, 미국 심장학회(ACC/AHA)도 2024년 들어서야 "심혈관 질환 예방에서 만성 염증을 주목해야 할 때"라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처음 데이터가 나온 지 약 3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 hs-CRP 정상 범위: 한국 기준 0.2mg/L 이하 (미국 기준 2mg/L 이하, 단위 차이 10배)
  • 주피터 연구: 콜레스테롤 정상 + hs-CRP 높은 사람에게 로수바스타틴 투여 → 심혈관 사건 50% 감소
  • 칸토스 연구: 염증 경로만 차단하는 카나키누맙으로도 심근경색·뇌졸중 사망률 약 20% 감소 확인
  • 콜히친 저용량 연구: 독립 연구팀이 같은 방향 재확인 → FDA 승인 획득
요약: hs-CRP는 30년간 쌓인 대규모 임상 근거를 가진 혈관 염증 지표지만, 의학계 내부의 이해관계 충돌로 일반에 뒤늦게 알려졌다.

 

생활습관으로 수치를 낮추려 했더니, 예상과 달랐던 점

일반적으로 만성 염증을 낮추려면 좋은 음식을 '추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메가-3, 강황, 항산화 식품 같은 것들이요. 저도 처음엔 그쪽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추가보다 제거가 먼저였습니다. 가공식품, 액상과당이 든 음료, 튀긴 음식을 줄이는 것만으로 제 컨디션이 훨씬 빨리 달라졌습니다.

이건 사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만성 염증이란 외부 자극이 끊이지 않을 때 몸의 면역계가 계속 응전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입니다. 대식세포(macrophage)가 이상 물질을 탐지하고, 호중구(neutrophil)가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정상 조직까지 손상되는 구조입니다. 대식세포란 조직에 상주하며 외부 침입자를 제일 먼저 탐지하는 면역 세포를 의미하고, 호중구란 혈액에서 출동해 침입자를 직접 제거하는 최전선 면역 세포를 뜻합니다. 이 과정이 수년 이상 지속되면 혈관 벽이 서서히 손상되는 동맥경화(atherosclerosis)가 진행됩니다.

제가 이 흐름을 이해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관점이 하나 있습니다. 요리사가 매일 칼질을 해서 팔꿈치에 과부하가 쌓이면 염증이 생깁니다. 그 요리사한테 "항염 음식 드세요"라고 말하는 건 반만 맞는 조언입니다. 진짜 문제는 반복 자극이 왜 끊이지 않는지를 보는 것이거든요. 삶의 패턴이 염증의 원인이고,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수치는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식단 하나 고치면 금방 해결될 것 같았는데, 수면 패턴과 스트레스 수준이 함께 맞물려 있었습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hs-CRP는 감기, 치과 염증, 격한 운동 직후, 수면 부족 상태에서도 일시적으로 오릅니다. 제가 한 번의 검사 결과만 보고 지레 걱정했던 적이 있는데, 추이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수치가 계속 높게 나오거나 발열, 원인 모를 체중 감소, 극심한 피로가 동반된다면 CBC(전혈구 검사)나 ESR(적혈구 침강속도) 같은 추가 혈액 검사와 함께 의사에게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맞습니다. CBC란 혈액 속 적혈구·백혈구·혈소판 수를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기본 혈액 검사이고, ESR이란 적혈구가 가라앉는 속도를 측정해 체내 염증 정도를 가늠하는 보조 지표입니다.

제 경우 생활관리에서 가장 효과를 실감한 순서는 이랬습니다. 자극 제거(가공식품·단 음료 줄이기), 수면 시간 확보(7시간 이상),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30분 이상 빠르게 걷기), 그리고 스트레스 요인 점검 순이었습니다.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만.

요약: 만성 염증 관리는 좋은 것 추가보다 반복 자극 제거가 먼저이며, hs-CRP 수치는 단 한 번의 결과가 아니라 추이로 판단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hs-CRP 수치가 0.2mg/L를 넘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한 번의 수치만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추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기나 운동 직후에도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같은 조건(공복, 안정 상태)에서 두 번 이상 측정해 지속적으로 높게 나온다면 그때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발열이나 극심한 피로가 동반된다면 즉시 진료를 권합니다.

 

Q. 콜레스테롤이 정상인데도 hs-CRP를 검사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A. 네, 이 부분이 기존 상식과 가장 다른 지점입니다. 주피터 연구는 콜레스테롤이 정상 범위인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는데도 hs-CRP가 높은 그룹에서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률이 의미 있게 높았습니다. 동맥경화는 콜레스테롤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만성 염증이 혈관 벽에서 진행되는 복합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40대 이상이라면 한 번쯤 확인해볼 만한 지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운동하면 hs-CRP가 올라간다고 들었는데 운동이 오히려 해롭지 않나요?

A. 격렬한 운동 직후에는 일시적으로 hs-CRP가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급성 반응이고,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이어갔을 때 장기적으로는 만성 염증 수치가 낮아진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도 단기 수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꾸준한 패턴이 더 중요했습니다. 측정은 운동 후 바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Q. 동맥경화는 증상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알 방법이 전혀 없나요?

A. 동맥경화는 혈관이 상당히 좁아질 때까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혈전이 혈관을 막아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으로 이어지는 것이 전형적인 경과입니다. hs-CRP는 이 조용한 진행 과정을 간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혈압, 당화혈색소와 함께 정기적으로 함께 보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30년 가까운 임상 근거가 쌓였음에도 hs-CRP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의학 정보도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전달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좋은 데이터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람들한테 닿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40대 이후라면 건강검진에서 hs-CRP 항목을 한 번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0.2mg/L 이하가 정상이고, 높게 나왔다면 생활 패턴 전반을 점검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특정 보충제나 약보다, 반복 자극을 줄이는 방향이 먼저입니다. 염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염증을 계속 유발하는 생활 패턴이 문제라는 것, 그게 제가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얻은 핵심 결론입니다.

참고: https://youtu.be/WV4twypGPlQ?si=fJrOER4o95u4SmIN

솔직히 저는 한참 당하는 동안 그게 가스라이팅인 줄 몰랐습니다. 그냥 제가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제가 예민한 건가 보다 하면서 혼자 갉아먹혔지요. 가스라이팅은 단순한 심리 조종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판단력과 주체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꽤 정교한 구조를 가진 관계 패턴입니다. 이 글은 그 구조를 짚어보고, 제가 실제로 겪으며 느낀 것들을 덧붙인 기록입니다.

 

가스라이팅 예방

처음엔 정말 좋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 관계 형성 단계의 함정

가스라이팅은 처음부터 나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그 사람이 제일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상담심리학에서는 이 초기 단계를 '의존 형성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의존 형성이란, 상대가 나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점점 그 관계에 기대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재미있지만 어쩐지 불쌍하고, 도와줄 수밖에 없는 죄책감이 스멀스멀 쌓이는 느낌 — 저는 그게 친밀감인 줄 알았습니다.

그 다음은 기억 왜곡이 시작됩니다. 제 작은 실수나 약점을 부풀리고, "너 그렇게 하면 사람들 다 싫어해", "너 그러면 비전 없어" 같은 말들이 반복됩니다. 처음엔 조언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람 말 없이는 제가 뭔가를 결정하기가 두렵고 불안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가 이 패턴에 특히 취약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수직화된 위계 구조, 즉 권력과 직함과 나이 차이가 명확한 관계일수록 가스라이팅이 파고들 여지가 커진다는 거죠. 실제로 출처: 미국정신의학협회(APA)에서도 심리적 조종은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 초기에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식의 과도한 친절을 보인다
  • 상대의 작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며 자신감을 깎는다
  • 수직적 관계(나이·직함·경제력 차이)에서 특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 처음에는 진짜 도움도 조금 주기 때문에 완전히 반박하기 어렵다
요약: 가스라이팅은 달콤한 의존 형성으로 시작해, 서서히 피해자의 판단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관계 패턴입니다.

 

가장 무서운 건 고립이었습니다 — 미니마이징과 나르시시스트의 언어

가스라이팅의 4단계 중 제가 가장 늦게 알아챈 건 미니마이징(minimizing) 단계였습니다. 미니마이징이란 피해자의 감정이나 판단을 사소하게 만들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 오직 자신에게만 의존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저는 이 단계에서 가족이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말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제가 만들던 작업물의 방향이 이상해졌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도 제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제3자의 눈으로 저를 봐주는 사람들 덕분에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거죠.

나르시시스트, 더 정확히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를 가진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말투를 씁니다. "난 너 도와준 것밖에 없다", "너 때문에 피해 엄청 받는다", "나 없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이런 말들이 강한 자기 연민과 협박을 번갈아가며 나옵니다. 여기서 자기 연민이란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해 상대의 공감 능력을 역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거리를 두려 하자, 그 친구는 "네가 바뀌었다", "너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피해 본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확히 교과서에 나오는 패턴이었는데, 그때도 저는 잠깐 흔들렸습니다. 공감 능력이 높고 관계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말에 더 쉽게 걸린다는 분석도 있는데, 저는 그게 맞다고 봅니다.

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 따르면,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낮고 타인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를 착취하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사랑'이나 '도움'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 관계를 끊어내기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하죠.

요약: 미니마이징 단계는 주변을 고립시키고,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연민과 협박을 번갈아 써서 피해자의 공감 능력을 역이용합니다.

 

단절이 정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 실전에서 통한 것들

가스라이팅을 끊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절이라는 의견이 있고,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단번에 손절이 되는 상황은 드뭅니다. 특히 공동 지인이 있거나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시도한 건 즉각 반응을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계 설정(boundary setting)이라고 부릅니다. 경계 설정이란 상대의 요구나 감정에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와 선을 의식적으로 유지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좋은 제안인데 좀 생각해 볼게요"라는 짧은 말 한 마디가, 생각보다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는 데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3자에게 물어보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친구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를 혼자 판단하려 했는데, 판단력 자체가 이미 흔들려 있으면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가족이나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 또는 상담 전문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그 사람 말에 대한 '교차 검증'이 됩니다. 저도 이제 교육장 선생님이나 오래된 어른들께 조금씩 꺼내놓을 생각입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팩트를 들이밀거나 정면으로 반박하면 해결이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역효과라고 봅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핵심은 깊은 수치심인데, 거기를 건드리면 나르시시스틱 레이지(narcissistic rage), 즉 자기애가 위협받을 때 폭발하는 격렬한 분노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맞서는 대신 거리를 벌리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 즉각 반응 멈추기: "좀 생각해 볼게요" 한 마디로 통제권을 흐트러뜨린다
  • 제3자 교차 검증: 오래된 지인, 가족, 상담 전문가에게 털어놓아 판단력을 보정한다
  • 그 사람의 지배권이 강한 공간(특정 모임, 단체방 등)에서 서서히 물러난다
  • 정면 반박보다는 거리 조절이 안전하다 — 나르시시스틱 레이지를 자극하지 않는다
  • 작은 것부터 직접 결정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반복한다
요약: 단절이 궁극적 해법이지만, 당장 어렵다면 즉각 반응을 멈추고 제3자 검증과 경계 설정으로 조금씩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스라이팅인지 그냥 잔소리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A. 훈육이나 조언은 상대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반면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자신에게 더 의존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 말을 들은 후 제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됐는지, 아니면 더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꽤 유효합니다.

 

Q. 나르시시스트랑은 대화로 풀 수 없나요?

A. 대화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기애성 인격장애(NPD)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화가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더 많습니다. 팩트를 들이밀면 오히려 나르시시스틱 레이지를 자극할 수 있어서, 저는 맞서는 것보다 거리를 조절하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Q. 자존감이 낮으면 가스라이팅을 더 많이 당하나요?

A. 꼭 의존적인 성격이 아니어도 자기 확신이 부족하면 당할 수 있다는 걸, 저는 직접 겪으며 깨달았습니다.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못할수록 상대의 말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고, 거기서 착취가 시작됩니다. 자존감이 낮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것이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Q.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도 자기가 그러는 걸 알까요?

A.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의도를 갖고 착취하는 나르시시스트형도 있고, 상대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무의식적으로 동반 의존 관계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는 본인이 사랑이라고 느끼며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더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제 독립성과 주체성이 손상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론

저는 아직 완전히 단절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사실을 적으면서도 꽤 씁쓸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제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고, 제 열정과 독립성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불안정할 때 다가오는 사람을 무조건 경계하라는 말이 너무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제가 가장 흔들릴 때 저를 가장 필요로 했던 사람이 결국 저를 가장 많이 갉아먹었습니다. 주기적으로 내가 어떤 관계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 그 관계가 나를 두 발로 서게 하는지 주저앉게 하는지를 살피는 것 — 그게 제가 지금 반복하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조금 줬다고 평생 그걸 빌미로 삼는 사람에게서는 과감히 거리를 두어도 됩니다. 남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제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단단한 방어막입니다.

참고: https://youtu.be/Vy3CnENQoXs?si=Cgyr7b6SFBk1LF6w

식당 메뉴판이 눈에서 점점 멀어지고, 휴대폰 글씨가 흐릿하게 번지기 시작하면 대부분 "아, 나도 드디어 노안이 왔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저는 20년 전 라식수술을 받은 뒤 지금까지 시력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주변에서 노안으로 고생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노안 안약 비즈(Vuity)가 국내 식약처 허가를 신청한 상황이라, 이 약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제대로 짚어봤습니다.

 

라식수술 이미지1장

노안의 원인, 왜 가까운 것만 안 보일까

눈이 나빠진 경험이 없는 분들은 노안이 그냥 '시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노안은 멀리는 잘 보이는데 가까운 것만 초점이 안 맞는 상태입니다. 이를 의학적으로는 조절력(Accommodation) 저하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조절력이란 수정체가 두꺼워졌다 얇아졌다 하며 초점 거리를 바꾸는 능력을 말합니다. 카메라 줌 렌즈가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수정체의 탄성 저하입니다. 나이가 들면 수정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변성되면서 딱딱하게 굳고, 두꺼워졌다 얇아졌다 하는 탄력을 잃게 됩니다. 두 번째는 모양체근(섬모체근) 약화입니다. 수정체 주변을 감싸고 수축·이완하는 근육도 함께 노화되어 수정체를 충분히 조여주지 못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40대 중반부터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조절력은 사실 10세부터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만 3디옵터 이상의 조절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40대 중반을 기점으로 3디옵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비로소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시인 분들은 이미 초점을 앞으로 당겨오는 부담이 큰 상태이기 때문에 노안을 더 일찍, 더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근시인 경우에는 안경을 벗으면 가까운 것이 그나마 보이기 때문에 노안을 상대적으로 늦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수정체 탄성 저하: 단백질 변성으로 딱딱해지고 탄력 소실
  • 모양체근 약화: 수정체를 조여주는 근육 기능 저하
  • 조절력이 3디옵터 아래로 내려가는 시기가 증상 체감의 기준점
  • 원시 보유자는 노안 증상을 더 일찍 강하게 경험
요약: 노안은 수정체 탄성 저하와 모양체근 약화가 겹치면서 생기는 조절력 문제로, 4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체감됩니다.

 

비즈 안약의 핵심, 피놀효과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2024년 FDA 승인을 받은 비즈(Vuity)는 아세클리딘(Aceclidine)이라는 성분을 주성분으로 합니다. 이 약의 핵심 원리는 피놀효과(Pinhole Effect)입니다. 피놀효과란 동공을 좁혀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작게 만들어 초점 심도를 깊게 하는 원리입니다. 카메라에서 접사 촬영 시 조리개를 최대한 좁히면 가까운 피사체도 또렷하게 찍히는 것과 같습니다. 수정체가 두꺼워지는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빛의 경로를 제한해 선명도를 높이는 방식입니다.

비즈 이전에도 노안 안약의 시도는 있었습니다. 2021년 FDA 승인을 받은 뷰이티(Vuity) 1세대는 필로카르핀(Pilocarpine) 성분으로 만들어졌는데, 원래 안압이 높은 녹내장 환자에게 쓰이던 약을 저농도로 조정한 것이었습니다. 필로카르핀은 동공 수축 효과가 있는 반면, 모양체근도 함께 수축시켜 수정체가 두꺼워지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가까운 것은 잘 보이게 됐지만 멀리 있는 시력이 함께 떨어지는 문제가 보고됐습니다.

비즈는 이 단점을 개선했습니다. 동공만 선택적으로 좁히고 모양체근 수축은 최소화해 원거리 시력 저하를 줄인 것이 핵심 차이입니다. 효과 지속 시간도 기존 6시간대에서 약 10시간으로 늘었습니다. 제가 직접 검토해본 결과, 이 약은 근본 치료제라기보다 '피놀 콘택트렌즈를 10시간 착용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습니다. 실제로 시력 검사표 기준으로 2~3줄 정도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출처: 미국 FDA).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동공이 좁아지면 어두운 환경에서 빛이 적게 들어오기 때문에 야간 운전 시 불편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두통과 눈 충혈, 주변부 시야 감소도 보고된 부작용입니다. 특히 고도근시처럼 망막박리 위험이 높은 분들은 모양체근 수축이 유리체를 당겨 망막에 물리적 부담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요약: 비즈는 피놀효과로 동공을 좁혀 초점 심도를 높이는 방식이며, 기존 필로카르핀 계열보다 원거리 시력 저하를 개선하고 지속 시간을 늘린 것이 핵심 개선점입니다.

 

비즈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 국내 도입 전망

비즈가 모든 노안 환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약은 내 상황에 정확히 맞아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안과학적으로 비즈에 가장 적합한 대상은 초기 노안 단계, 즉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 사이의 활동적인 분들입니다. 백내장이 없고, 녹내장이나 황반변성 같은 기저 안질환이 없으며, 망막박리 이력이 없는 경우가 전제 조건입니다. 가까운 것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봐야 하는 직업군보다는 골프나 외부 미팅처럼 거리가 수시로 바뀌는 생활 패턴의 분들에게 특히 활용도가 높습니다.

반대로 백내장이 이미 진행됐다면 수술적 방법, 즉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고려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초점 인공수정체(Multifocal IOL)란 빛을 여러 초점으로 분산시켜 원거리와 근거리를 동시에 커버하는 인공 렌즈입니다. 다만 빛을 나누는 과정에서 선명도가 약간 낮아지고 야간 빛 번짐이 심해질 수 있어 생활 패턴에 따라 단초점 렌즈와 비교해 선택해야 합니다(출처: 미국안과학회(AAO)).

저는 20년 전 라식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주변에서 라식 후 노안이 더 일찍 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를 무조건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굴절 상태와 생활 패턴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노안이 오더라도 수술적 방법을 포함해 모든 옵션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안경이나 렌즈의 불편함, 이물감, 콧대를 누르는 압박감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내 도입 시기와 관련해서는, 비즈는 현재 국내 식약처에 신약 허가를 신청한 상태입니다. 허가가 나더라도 유통망 구축까지 수개월이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처방은 빠르면 2025년 말~2026년 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 면에서는 미국 기준 월 66달러(약 10만 원) 수준인데, 국내 시장에서 이 가격대가 얼마나 통할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 적합 대상: 40대 중반~50대 후반, 초기 노안, 안질환 없음, 활동적인 생활 패턴
  • 비적합 대상: 백내장·녹내장·황반변성 보유자, 망막박리 이력자, 고도 원시, 심한 노안
  • 수술 대안: 백내장 동반 시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 백내장 없으면 레이저 각막 성형술
  • 국내 도입: 식약처 허가 신청 완료, 실제 처방까지 수개월 추가 소요 예상
요약: 비즈는 초기 노안의 활동적인 성인에게 적합한 가역적 옵션이며, 안질환이 있거나 노안이 심한 경우에는 수술적 방법을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비즈 안약을 넣으면 노안이 완치되는 건가요?

A. 완치는 아닙니다. 비즈는 딱딱해진 수정체를 다시 말랑하게 되돌리는 약이 아니라, 동공을 좁혀 초점 심도를 깊게 하는 피놀효과를 이용한 것입니다. 효과는 약 10시간 지속되며, 점안을 중단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근본 치료제라기보다 일시적 교정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Q. 라식수술을 받은 사람도 비즈를 쓸 수 있나요?

A. 라식·라섹 후 정시 또는 약한 원시 상태인 분들도 초기 노안에 비즈 사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라식 후 각막이 얇아진 경우나 기저 안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안과 검진 후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망막 상태 확인도 사전에 필수입니다.

 

Q. 노안을 늦추는 음식이나 영양제가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A. 루테인, 블루베리, 녹황색 채소 등은 눈에 필요한 항산화 영양소를 공급해 망막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미 진행된 노안을 되돌리거나 확실하게 늦추는 효과는 현재 임상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매일 블루베리를 챙겨 먹고 있지만, 이것이 노안을 막아준다기보다 전반적인 눈 건강 관리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비즈와 돋보기 안경, 어느 쪽이 더 나을까요?

A. 어떤 것이 무조건 낫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거나 가까운 것을 지속적으로 봐야 하는 경우라면 안경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을 만나거나 야외 활동이 많아 안경 착탈이 번거로운 분들에게는 비즈가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됩니다. 생활 패턴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Q. 비즈 안약은 한국에서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나요?

A. 비즈라는 상품명으로는 아직 국내 처방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식약처 허가 신청 중이며, 허가 후 유통망 구축까지 수개월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다만 비슷한 원리의 필로카르핀 성분 안약은 안과 처방을 통해 허가 외 사용(Off-label use) 형태로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결론

저는 20년 전 라식수술 직후 눈을 뜨는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뿌옇던 세상이 한순간에 또렷해지던 그 느낌은 눈이 나빠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래서 노안 안약 비즈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반가웠습니다. 수술 없이 안약 한 방울로 가까운 것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비즈는 노안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이 아닙니다. 피놀효과를 통해 10시간 정도 가까운 시력을 보조해주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국내 도입 후 처방을 고려한다면, 먼저 안과에서 망막 상태와 안질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노안은 이기려고 싸울 대상이 아니라, 잘 관리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몸의 변화입니다. 어떤 옵션이 내 생활 패턴에 맞는지를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참고: https://youtu.be/TtLOy4-DhNo?si=RHhGwwSy8DvCkKEc

지인의 딸이 3D 그래픽을 전공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취업 대신 학원을 다시 다니고 있습니다. AI가 포트폴리오 작업 상당 부분을 해버리니 퀄리티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로봇과 AI가 정말로 우리 일자리를 어떻게 바꿀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봇이 일자리를 뺏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주변에서 직접 목격한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가정용로봇

가정용 로봇, 10년 안에 정말 올까

솔직히 처음에는 10년 안에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로봇이 상용화된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현재 로봇 공학계에서 제시되는 수치를 보면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뀝니다.

현재 산업용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즉 사람의 형태를 닮아 두 발로 서서 팔을 사용하는 로봇의 목표 가격은 대략 5천만 원 선입니다. 2~3년 내 제조 현장 투입을 목표로 여러 기업이 개발을 경쟁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대표 사례인데, 일론 머스크 특유의 일정 지연은 있지만 방향 자체는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가정용 로봇이 산업용보다 늦게 나오는 이유는 부가 가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처음엔 공장 쪽이 돈이 더 되니까 먼저 만드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안전 인증 문제가 핵심입니다. 공장은 작업 환경이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고, 사고가 나더라도 수리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은 다릅니다. 백 가구가 있으면 백 가지 환경이 다르고, 아이나 노인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오작동이 발생하면 즉시 소송으로 이어집니다.

HRI(Human-Robot Interaction), 쉽게 말해 인간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분야가 이 문제를 다룹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개념이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입니다. 언캐니 밸리란 로봇의 외형이 인간과 어느 정도 비슷해지면 호감도가 올라가다가, 너무 흡사해지면 오히려 불쾌감이 치솟는 구간을 뜻합니다. 좀비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릅니다. 이 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가정용 로봇 상용화의 심리적 관문입니다.

  • 산업용 휴머노이드: 2~3년 내 5천만 원대 목표
  • 가정용 로봇: 10년 내 1천만~5천만 원대 등급별 출시 전망
  • 상용화 관건: 안전 인증, 언캐니 밸리 극복, 수년간 실증 테스트
요약: 가정용 로봇은 기술보다 안전 인증과 심리적 수용 문제 때문에 산업용보다 늦게 출시되며, 10년 내 상용화는 가능성 있는 전망입니다.

 

노동의 종말, 실제 현장은 다른 이야기

일반적으로 로봇이 일자리를 뺏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지인의 딸 이야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AI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기보다, 경쟁 강도가 높아지면서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구조로 바뀐 거였습니다. 이건 미세하지만 중요한 차이입니다.

실제 제조 현장을 보면 시각이 또 달라집니다. 대기업 중심으로만 생각하면 "로봇이 사람 자리를 빼앗는다"는 공식이 맞습니다. 그런데 전체 제조업의 95%를 차지하는 중소 제조업체,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미 사람이 없습니다. 젊은 층이 3D 업종을 기피한 지 꽤 됐고, 현장 평균 연령은 이미 50대를 훌쩍 넘었습니다. 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이며,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그분들이 10년 안에 대부분 은퇴하면,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맥락에서 로봇은 일자리를 뺏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 사라질 뻔한 산업을 지켜내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제가 처음 이 시각을 접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로봇 도입 논의가 늘 "대체"의 언어로 포장되는데, 현장 실태는 "보존"에 가깝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픽 앤 플레이스(Pick and Place) 작업이 대표적입니다. 물건을 집어서 지정된 위치에 내려놓는 이 단순 반복 공정은, 사람에겐 허리와 손목을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로봇이 이 작업을 맡으면 산재가 줄고 공정 연속성이 확보됩니다.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제조업 산업재해 중 반복 동작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이 상위권을 꾸준히 차지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들어가는 게 인간에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되는 지점입니다.

요약: 로봇은 일자리를 빼앗기보다 사람이 떠난 자리와 위험한 반복 공정을 채우는 역할에 더 가깝습니다.

 

미래 교육, 답 아는 사람보다 질문하는 사람

지인의 딸에게 조언을 건네면서 제가 결국 한 말은 이랬습니다. "AI가 아무리 3D 그래픽을 자동으로 만들어도, 사람 손이 닿은 결과물에 대한 인간의 호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다." 그래서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핸드메이드 감성이나 아트 디렉팅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라고 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그간 쏟아부은 시간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선뜻 결정을 못 하더군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습니다.

이 상황이 결국 교육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정답을 빨리 꺼내는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AI가 정답 생성을 인간보다 월등히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지금, 그 평가 기준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레포트 제출 과제는 사실상 AI 과제가 됐고, 교수자 입장에선 평가 자체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래 인재상을 "창의성"이라는 막연한 단어로 정의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건 더 구체적입니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힘입니다. 이걸 프롬프트 리터러시(Prompt Literac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쉽게 말해 인공지능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질문을 설계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암기로 키워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엇을 시켜야 할까. 제가 생각하는 방향은 단순합니다. 그 아이가 밤새워도 안 지치는 게 뭔지를 먼저 찾아주는 겁니다. 한 일주일간 실컷 하게 해보고, 그래도 더 하고 싶어 하면 그게 방향입니다. 인간이 좋아하는 일은 로봇이 대체하기 가장 어렵습니다. 자동차가 인간보다 빠른데도 사람들이 육상 경기를 계속 보듯이, 인간이 즐기며 만들어내는 것에는 대체 불가한 가치가 있습니다.

요약: 미래 교육의 핵심은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능력이며, 아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곧 AI 시대에 살아남는 직업의 씨앗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정용 로봇 가격이 1천만 원대까지 내려올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첫 출시 가격은 1천만~5천만 원 사이 등급별로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이건 10년 내 상용화 시점 기준 예측이며, 초기 물량이 대량 생산 단계에 도달해야 가격이 의미 있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기술 제품 가격은 생산량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급락하는 경향이 있어, 상용화 초기와 3~5년 후 가격은 꽤 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Q. 로봇이 일자리를 뺏는 건 사실 아닌가요?

A. 대기업 중심 공정에서는 대체 우려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체 제조업의 95%를 차지하는 중소·소규모 사업장은 이미 사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 맥락에서 로봇은 대체자가 아닌 공백을 메우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직종별로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뺏긴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Q. 언캐니 밸리가 로봇 보급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나요?

A. 생각보다 큰 변수입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로봇을 인간과 구분 가능하게 만들자는 그룹과 완전히 동일하게 만들자는 그룹이 나뉠 정도입니다. 가정용 로봇이라면 특히 아이나 노인이 장시간 함께 생활해야 하므로 심리적 저항감을 낮추는 디자인이 상용화 속도에 직결될 수 있습니다.

 

Q. AI 시대에 아이한테 어떤 공부를 시키면 좋을까요?

A. 저는 특정 과목보다 "밤새워도 안 지치는 것"을 먼저 찾아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인간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은 로봇과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분야든 AI를 도구로 다루는 프롬프트 리터러시 능력은 기본으로 갖추게 하는 게 실용적인 방향으로 보입니다.

 

결론

지인의 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제 자신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는 걸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 느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10년 뒤에도 의미 있을까"라는 질문은 직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제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로봇과 AI는 인간이 하기 싫어하거나 위험한 일부터 채워나갈 것이고, 인간이 좋아서 하는 일은 오히려 더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장의 직업 전환이 두렵다면, 지금 자신이 가장 몰입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봅니다. 혁명기에는 버티는 것보다 방향을 바꾸는 용기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6DaHbjDE9GA?si=GkNXdhlq6Dlrn-0d

시험 전날 밤을 새워가며 교재를 통째로 읽었는데, 시험지를 받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저도 대학교 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방식을 바꾸고 나서 성적이 달라졌고, 그게 단순한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는 걸 나중에야 이해했습니다. 공부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 자체를 무시하고 있었던 겁니다.

 

기억력 높이는 방법

10초 멈춤과 인출 연습, 뇌가 원하는 방식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팀이 2021년에 발표한 연구가 있습니다. 30명에게 새로운 키보드 동작을 가르치면서 뇌를 실시간으로 촬영했는데, 결과가 꽤 의외였습니다. 연습하는 10초 동안은 뇌가 거의 반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10초 동안 방금 배운 동작이 원래 속도의 20배로 압축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이 압축 재생이 25번 넘게 반복됐고, 재생 횟수가 많을수록 다음 연습에서 실력이 비례해서 올라갔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여기서 핵심은 이 압축 재생, 즉 신경 재활성화(neural replay)가 뇌가 완전히 비어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신경 재활성화란 학습 직후 쉬는 시간 동안 뇌가 방금 처리한 정보를 고속으로 되감으며 기억 회로를 강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쉬는 사이에 핸드폰을 켜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이 과정이 중단됩니다. 공부하다가 잠깐 쉰다고 인스타를 열었다가 20분이 사라지는 경험, 저도 수없이 했는데 그게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기억 형성 자체를 방해하는 행동이었던 겁니다.

저는 대학교 때 암기 과목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을 써봤습니다. 10초라는 단위는 몰랐지만, 읽다가 멈추고 기억나는 내용을 그냥 적어 내려가는 식으로 공부했는데, 이게 결국 A+로 이어졌습니다. 한 번 두 번 읽는 것만으로는 머리에 잘 남지 않았는데, 구조가 잡히고 내용에 형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달라졌습니다. 그때는 왜 이게 되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 방식이 인출 연습(retrieval practice)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인출 연습이란 외운 것을 다시 읽는 대신 기억을 직접 꺼내는 행동을 반복하는 훈련입니다. 2006년 워싱턴 대학교 실험에서 같은 글을 4번 읽은 그룹과 1번 읽고 나머지 3번은 책을 덮은 채 기억을 떠올린 그룹을 비교했습니다. 5분 뒤 시험에서는 4번 읽은 쪽이 앞섰지만, 일주일 뒤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반복 읽기 그룹은 56%를 잊어버렸고, 인출 연습 그룹은 13%만 잊어버렸습니다(출처: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제가 직접 써봤을 때도 이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책을 덮고 빈 종이에 기억나는 걸 적기 시작하면 처음엔 많이 틀리고 못 떠올립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뇌과학에서는 바로 그 불편함이 뉴런 사이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강화시키는 장기 강화(LTP, Long-Term Potentiation)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장기 강화란 신경세포 간 시냅스 연결이 반복적인 활성화를 통해 구조적으로 굵어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입니다. 읽기만 하면 자재를 현장에 쌓아두는 것이고, 직접 꺼내야 비로소 그 자재를 제자리에 박아 넣는 거라는 비유가 딱 맞습니다.

  • 한 문단 읽고 10초 눈을 감는다. 이 사이에 핸드폰을 보면 신경 재활성화가 중단된다.
  • 한 챕터가 끝나면 책을 덮고 빈 종이에 기억나는 것을 전부 적는다. 틀려도 된다.
  • 틀리고 헤매는 바로 그 순간에 장기 강화가 일어나며 기억이 구조적으로 강해진다.
  • 빈 종이에 적은 내용은 사진으로 찍어두고 며칠 뒤 비교하면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요약: 읽는 중간 10초 멈춤과 챕터 후 인출 연습이 단순 반복 읽기보다 기억 보존율을 4배 이상 높인다.

 

망각곡선을 역이용하는 간격 복습과 작업기억

기억을 한 번 만들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새로 배운 내용의 40%는 20분 만에 사라지고, 하루 뒤에는 70%, 한 달 뒤에는 80%가 증발한다는 망각곡선(forgetting curve) 데이터는 19세기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가 처음 제시한 이후 지금까지 반복 검증된 수치입니다. 망각곡선이란 학습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감소하는 속도를 나타낸 그래프로, 복습을 하지 않으면 기억은 지수적으로 빠르게 소멸합니다.

그런데 이 곡선에 반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딱 한 번 다시 떠올리면, 그다음부터 망각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집니다. 한 번도 복습하지 않으면 일주일 뒤 52%를 잊어버리지만, 세 번 간격 복습을 하면 14%만 잊어버립니다. 핵심은 타이밍입니다.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복습하면 뇌가 "이건 이미 아는 거"라고 처리하고 넘겨버립니다. 반대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 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지는 경계선, 그 순간에 꺼내야 뇌가 가장 강하게 반응합니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는 뇌의 예측이 빗나가는 바로 그 순간에 도파민 신호가 가장 강하게 올라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플래시카드 앱으로 간격 복습을 해보면서 제일 당황했던 건, 확실히 외웠다고 생각한 내용에서 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오히려 기억에 제일 단단하게 새겨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틀리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학습 타이밍이었던 겁니다.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을 써도 수학 문제에서 세 번째 조건을 읽는 순간 첫 번째 조건이 날아가는 경험, 저도 자주 했습니다.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기억(working memory) 용량 자체의 문제입니다. 작업기억이란 지금 이 순간 처리 중인 정보를 잠시 붙잡아두는 뇌의 단기 저장 공간으로, 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올릴 수 있는 자재의 양에 해당합니다. 이 용량이 작으면 복잡한 문제를 풀거나 여러 정보를 동시에 다루는 게 힘들어집니다.

2021년에 14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듀얼 N-백(Dual N-back) 훈련을 하루 30분씩 20일 동안 한 그룹이 훈련과 무관한 다른 인지 테스트에서도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듀얼 N-백이란 화면에서 변하는 위치와 귀로 들리는 소리를 동시에 추적하며, 두 번 전의 자극과 현재 자극이 같은지를 동시에 판단하는 두뇌 훈련입니다. 작업기억을 집중적으로 자극해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방식입니다. 처음 해보면 머리가 쑤시고 짜증이 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운동 첫날 근육통이 오는 것과 정확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크레인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챙겨야 할 게 있습니다. 집중하는 동안 뇌에는 피로 물질이 쌓이고, 약 90분이 지나면 같은 문장을 세 번째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리적 한계입니다. 90분 집중 후 20분 완전 휴식이 필요한데, 이 20분 동안 핸드폰을 보지 않고 눈을 감거나 가볍게 걷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뇌 전체의 기억 양생(curing) 시간 역할을 합니다. 양생이란 콘크리트가 굳는 과정에서 물을 공급해 최대 강도를 내는 작업으로, 이 시간을 빼앗기면 기억의 구조 자체가 약해집니다.

요약: 망각곡선의 경계 타이밍에 맞춘 간격 복습과 작업기억 훈련을 병행하면 기억 손실률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10초 멈춤을 하면 진도가 너무 느리게 나가지 않나요?

A. 제가 처음에 가장 걱정했던 부분도 그거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멈춤 없이 죽 읽었을 때보다 총 학습 시간이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읽고 기억에 남는 양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 시간이 사라지는 겁니다.

 

Q. 빈 종이에 적는 인출 연습,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면 어떻게 하나요?

A.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것 자체가 이미 훈련이 시작된 겁니다. 핵심 단어 두세 개라도 적으면 됩니다. 제 경험상 처음 며칠은 종이가 거의 비어 있다시피 했는데, 3일째부터 종이 한 면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를 직접 보게 되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됩니다.

 

Q. 듀얼 N-백 훈련 효과가 실제로 있나요? 학계 논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A. 전이 효과, 즉 훈련을 다른 영역에까지 일반화할 수 있느냐는 학계에서 아직 논쟁 중입니다. 다만 단기적으로 작업기억 처리 용량을 늘려주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완벽한 해결책으로 기대하기보다는 공부 전 워밍업 루틴 정도로 활용했고, 그 정도 기대치에서는 쓸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Q. 머리가 나쁜 사람은 이런 방법을 써도 소용없지 않나요?

A. 제가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타고난 두뇌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기억이 안 남는 가장 큰 이유는 뇌의 한계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구조를 먼저 잡고 자기만의 키워드로 틀을 만들어두면, 세부 내용은 그 구조에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연결고리 없이 외우려 했던 겁니다.

 

Q. 간격 복습 타이밍을 매번 직접 계산해야 하나요?

A. 그럴 필요 없습니다. 플래시카드 앱이 망각곡선을 기반으로 복습 타이밍을 자동으로 조절해줍니다. 맞히면 다음 복습 간격을 늘리고, 틀리면 빨리 다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하루 20분 정도면 충분하고, 직접 타이밍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결론

결국 공부 시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에 맞춰 행동 순서를 바꾸는 겁니다. 읽고, 멈추고, 꺼내 쓰고, 가물가물할 때 다시 떠올리는 것. 저는 이 순서를 바꾸고 나서 같은 시간에 훨씬 많은 게 남는다는 걸 직접 경험했습니다. 공부를 오래 했는데 남은 게 없다면, 방법이 뇌의 방식과 엇박자를 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챕터 읽고 책을 덮은 뒤 빈 종이에 기억나는 것 몇 줄만 적어보는 것, 그것 하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제 경험상 3일 뒤 종이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KnKCqEg_iJM?si=HCzHULTZ0aa7Y3bL

3년째 옷을 거의 안 샀습니다. 의류, 신발, 가방 — 딱히 참는다는 느낌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지갑이 닫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소비를 줄이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겁니다. 배달음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 살림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월급은 제자리인데 지갑은 왜 자꾸 얇아지는지, 그 구조를 직접 겪으면서 정리해봤습니다.

 

소비를 끊는 이유

월급은 늘었는데, 왜 쓸 돈은 줄었을까 — 소득 착시

솔직히 처음엔 저도 이게 기분 탓인 줄 알았습니다. 통장 숫자는 분명 늘어 있는데, 막상 뭘 사려고 하면 손이 멈추는 그 느낌. 알고 보니 이건 기분 탓이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가처분 소득의 착시(Disposable Income Illus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처분 소득이란 세금과 필수 지출을 제외하고 실제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을 뜻합니다. 명목상 소득은 올랐어도 물가와 고정 지출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출처: 통계청이 2026년 5월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48만 원으로 1년 전보다 2.4% 늘었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 소득 증가율은 0.4%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상 제자리입니다.

더 살펴보면, 소득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공적 이전소득 — 즉 연금이나 각종 지원금 — 에서 나왔습니다. 공적 이전소득은 7.8%, 사적 이전소득은 14.6% 뛰었는데, 정작 근로소득 증가율은 0.3%였습니다. 일해서 버는 돈은 거의 그대로인데 숫자만 올라 보이는 구조입니다.

저도 자영업을 하면서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매출을 늘리려면 마진을 줄여야 하고, 몸은 두 배로 힘든데 통장에 남는 건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멈추고 소비 자체를 줄이니, 제품 구매에 묶이는 돈도 줄고 몸도 편해졌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버는 것보다 안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요약: 명목 소득 증가의 대부분은 연금·지원금 덕분이고, 실질 가처분 소득은 사실상 제자리 — 지갑이 얇아진 건 기분 탓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배달앱보다 먼저 가져가는 것들 — 고정비 덫

배달음식 한 끼를 망설이게 된 건, 사실 배달비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이미 절반 이상의 행선지가 정해져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습니다.

고정비 덫(Fixed Cost Trap)이란 대출이자·관리비·보험료처럼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소득 대부분을 선점해버려 자유 소비 여력 자체가 사라지는 구조를 말합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가계 대출 잔액은 1,927조 원에 달했습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만 약 1,024조 원입니다. 평균 금리 5%만 적용해도 이자 부담이 연간 96조 원 수준입니다. 이 돈이 결국 월급에서 나옵니다.

제가 직접 가계부를 들여다봤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목욕탕도 끊고, 다이소 가위 두 개로 셀프 커트를 시작했고, 한 달에 열흘은 냉장고를 파먹으며 버팁니다. 세차도 직접 합니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해보니까 별 것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줄이고 나서 남은 돈으로 회나 일식을 가끔 제대로 먹는 쪽이 훨씬 만족스러웠습니다.

소비가 줄어드는 순서를 보면 이유가 보입니다. 끊을 수 없는 것들 — 대출이자, 보험료, 통신비, 관리비 — 은 손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미룰 수 있는 것부터 포기합니다.

  • 1단계: 배달음식·외식 축소
  • 2단계: 술자리·카페 줄이기
  • 3단계: 의류·미용·여가 지출 감소
  • 4단계: 택시·주말 외출 제한

저도 이 순서를 그대로 밟았습니다. 여행과 쇼핑 외식 배달을 줄이고, 의류·신발·가방은 3년째 거의 구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엔 뭔가 포기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이게 제 생활 방식이 됐습니다.

요약: 고정비가 소득을 먼저 가져가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결국 '미룰 수 있는' 소비부터 하나씩 잘라냅니다 — 배달앱을 끄는 건 그 흐름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우리 동네 식당이 사라지고 있다 — 골목상권

벌이는 예전이랑 거의 똑같은데, 배달음식은 오르고, 막상 시키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너무 낮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도 냉동 국물에 이것저것 넣어 직접 끓여 먹기 시작했습니다. 해보니까 맛있었습니다. 요리에 버릇이 들고 나니, 오히려 시켜먹는 음식이 돈이 아까워서 안 시키게 됐습니다.

이런 선택이 모이면 골목 반대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외식업 폐업률(Restaurant Closure Rate)은 2024년 기준 15.82%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더 주목할 부분은 2025년 1분기 수치입니다 — 폐업한 음식점이 개업한 음식점보다 732곳 더 많았습니다. 문을 닫는 가게가 새로 여는 가게를 처음으로 앞지른 겁니다(출처: 국세청 통계연보 기반 분석).

이 흐름이 무서운 건 대형 상권보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동네, 지방 중소도시 골목에서 더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일수록 손님 한 명의 선택이 그대로 매출에 반영됩니다. 20년, 30년 그 자리를 지키던 사장님이 어느 날 조용히 짐을 빼는 일이 지금 전국 골목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비 위축이 자영업 폐업을 부르고, 폐업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다시 소비를 줄이는 악순환(Deflationary Spiral) — 여기서 악순환이란 한 번 빠지면 외부 충격 없이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제적 하강 고리를 뜻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발표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 보고서에서도 이 구조가 단기 부양책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60대의 소비성향 하락폭이 가장 컸습니다 — 69.3%에서 62.4%로, 10년 사이 약 7포인트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요약: 개인의 배달앱 한 번 끄는 선택이 골목 반대편 사장님의 한 달 매출과 연결되어 있고, 이 흐름이 쌓이면 자영업 붕괴와 일자리 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득이 늘었다는데 왜 실제로 쓸 돈은 줄어드는 건가요?

A. 소득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근로소득이 아닌 연금·지원금 같은 이전소득에서 나온 탓입니다. 여기에 물가 상승을 반영하면 실질 소득 증가율은 0.4%에 불과합니다. 명목 숫자는 올라도 실제 살림은 제자리라는 게 가처분 소득 착시의 핵심입니다. 혹시 이 차이를 체감한 적 있으신가요?

 

Q. 배달음식 대신 직접 해먹으면 실제로 얼마나 절약이 되나요?

A. 제 경험상 한 끼 배달이 최소 1만 5천~2만 원인데, 같은 재료로 냉장고를 활용해 끓이면 3천~5천 원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한 달에 10일만 냉장고를 파먹어도 월 10만 원 이상 차이가 납니다. 처음엔 귀찮게 느껴지지만 요리가 습관이 되면 오히려 시켜먹는 게 아깝게 느껴집니다.

 

Q.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가 도입되면 자영업자에게 유리해지지 않나요?

A. 단순히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동국대 이석 교수 연구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수수료 상한제 도입 시 플랫폼의 마케팅 할인이 대폭 줄어들면서 외식 시장 매출이 최대 7조 8천억 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됐습니다. 과거 미국 일부 주에서도 수수료 상한제 시행 후 배달비가 오히려 폭등한 사례가 있습니다. 좋은 취지의 규제가 반드시 현장 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고정비를 줄이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A. 저는 먼저 자동이체 목록을 전부 꺼내서 가입 시점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구독 서비스, 중복된 보험이 꽤 있었습니다. 금융감독원 무료 보험 점검 서비스나 통신사 요금제 재조정부터 손대면 매달 수만 원씩 바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론

배달앱을 끄는 건 절약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소득 착시, 고정비 덫, 골목상권 붕괴라는 세 겹의 구조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제가 3년 동안 옷 한 벌 안 사고, 목욕탕을 끊고, 셀프 커트를 하면서 느낀 건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 소비를 줄이니 마음이 편해졌고, 줄어든 소비 덕분에 오히려 진짜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고정비부터 한 번 들여다보시기를 권합니다. 자동이체 목록, 안 쓰는 구독, 중복 보험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체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니던 동네 단골 가게 한 곳만이라도 한 달에 한 번 찾아주는 것 — 그게 지금 이 시기에 이웃이 이웃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youtu.be/wqcAm8bmdiE?si=9tMbhe0GU6x33g3N

솔직히 저는 캐나다 홈스테이를 하기 전까지 이런 설거지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상상도 못 했습니다. 세제 거품이 잔뜩 묻은 접시를 그냥 건조대에 올려두는 걸 처음 봤을 때, 제가 뭔가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영국식 설거지라 불리는 이 방식, 이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는 100년 넘게 쌓인 경제적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 설거지문화

두 개짜리 수도꼭지가 만든 100년의 관습

제가 캐나다 홈스테이 두 번째 집으로 이사했을 때의 일입니다. 5인 가족이 사는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어느 날 저녁 설거지하는 걸 옆에서 봤습니다. 세제 거품이 가득한 물에 그릇을 넣고 수세미로 쓱싹 문지른 뒤, 그냥 건조대에 올려놓더라구요. 제가 "왜 헹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가족은 오히려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이걸 왜 닦아?"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게 제 첫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습관의 뿌리는 영국에 있었고, 그 시작점은 수도꼭지 구조에 있었습니다. 영국의 오래된 주택에는 냉수와 온수 수도꼭지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왼쪽을 틀면 손이 데일 만큼 뜨거운 물만 나오고, 오른쪽을 틀면 얼음처럼 차가운 물만 나옵니다. 미지근한 물을 쓰려면 싱크대에 물을 받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구조가 생긴 이유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영국의 온수 공급 방식은 다락방 물 탱크에 물을 받아 보일러로 데우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탱크의 위생 상태였습니다. 뚜껑이 완전히 밀폐되지 않아 먼지와 녹이 쌓이고, 심지어 죽은 쥐나 비둘기가 빠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깨끗한 냉수와 오염 가능성이 있는 온수가 수도꼭지 안에서 절대 섞이지 못하도록 두 개로 분리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원칙은 1999년 정식 법률로 굳어졌고, 지금도 오래된 영국 주택의 대부분은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흐르는 미지근한 물에 접시를 헹군다는 선택지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겁니다. 헹구지 않는 게 게으른 습관이 아니라, 헹굴 수 없는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방식이었습니다.

요약: 영국의 분리형 수도꼭지는 19세기 오염된 온수 탱크 문제에서 비롯된 법적 규정이며, 이것이 헹구지 않는 설거지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석회수와 에너지 요금이 만든 생존 방정식

그렇다면 싱크대에 깨끗한 물을 다시 받아서 한 번 더 헹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간단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경수(硬水) 문제입니다. 경수란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된 물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석회 성분이 잔뜩 녹아 있는 물입니다.

런던이 위치한 영국 남부 지역의 땅 아래에는 수천만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Chalk) 지층이 깔려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이 석회암 층을 통과하면서 칼슘 성분을 잔뜩 흡수하게 됩니다. 런던 수돗물의 경도(水硬度)는 물 1리터당 약 293mg으로, 유럽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높은 수치입니다(출처: Thames Water). 경도란 물에 녹아 있는 미네랄 농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높을수록 석회 침착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홈스테이에서 생활할 때 가장 불편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석회 문제였습니다. 전기포트 바닥에 하얀 가루가 딱딱하게 달라붙고, 유리컵에 물을 담았다 버리면 하얀 얼룩이 남습니다. 변기에도 누렇게 석회 성분이 쌓여서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냄비 바닥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물로 접시를 헹궜다가는 세제는 씻겨나가지만 대신 하얀 석회 얼룩이 남습니다. 영국인들은 그래서 눈에 보이는 돌가루 얼룩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제 잔류물을 선택한 겁니다.

여기에 에너지 요금 문제가 더해집니다. 영국은 원래도 유럽 평균을 웃도는 에너지 비용을 유지해 왔습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영국 평균 가구 에너지 요금은 연간 약 1,038파운드(우리 돈으로 약 190만 원) 수준이었는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그 해 10월 영국 정부가 설정한 에너지 요금 상한선은 불과 1년 반 만에 세 배 가까이 치솟아 연간 약 600만 원, 한 달에 5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 됐습니다(출처: Ofgem(영국 에너지 규제기관)).

이런 상황에서 흐르는 온수로 접시를 헹구는 행위는 사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입니다. 싱크대에 온수 한 바가지를 받아 모든 식기를 처리하는 방식은 가스도 물도 최소한으로 쓰는, 이 나라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거기에 최근 수도 요금도 사용한 만큼 내는 종량제 방식이 본격 도입되면서, 물을 흘려보내는 행위 자체가 실시간 요금 손실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 런던 수돗물 경도 약 293mg/L — 유럽 최상위권 석회 농도
  • 2022년 에너지 요금 상한선, 1년 반 만에 약 3배 폭등
  • 종량제 수도 요금 도입으로 물 낭비가 직접적 금전 손실로 연결
  • 영국·호주·뉴질랜드·아일랜드 등 영국 영향권 국가에서 동일 문화 확산
요약: 석회암 지층에서 비롯된 고경도 수돗물과 살인적인 에너지 요금이 맞물려, 헹구지 않는 설거지가 영국에서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세제 안전성과 달라지는 세대

제가 홈스테이 가족에게 "화학제품을 매일 먹는 거 아니냐"고 따졌을 때, 그들은 "평생 이렇게 해왔는데 아무 문제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엔 황당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럽에는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화학 제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규정(EU CLP Regulation)이 있습니다. EU CLP란 화학물질의 분류·표시·포장에 관한 유럽연합 규정으로, 인체가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제품은 반드시 이 기준을 통과해야만 판매할 수 있습니다. 영국도 EU 탈퇴 이후 동일한 수준의 규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촉했을 때 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상적으로'라는 단어입니다. 접시에 남은 극미량의 잔류물을 수십 년간 섭취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서 안전 기준을 잡았다는 뜻입니다.

영국 시장을 장악한 세제 브랜드들은 이 점을 철저히 활용했습니다. 독성이 있는 계면활성제(Surfactant) 성분을 빼고 식물성 계면활성제를 사용했습니다. 계면활성제란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하는 성분으로, 세제의 핵심 세정 성분입니다. 여기에 비타민 E와 알로에 성분까지 추가해 피부 자극을 최소화했습니다. 광고에서도 헹구는 장면을 아예 없애고, 거품 묻은 접시를 건조대에 자연스럽게 올려놓는 장면을 내보냈습니다. 헹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식처럼 보여주는 전략이었습니다. 농축 세정력에 집중해 적은 물로 모든 식기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맥락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틱톡에 영국의 설거지 장면이 퍼지면서 영국의 젊은 세대가 먼저 반응했습니다. "솔직히 나도 엄마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몰래 헹궜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복합형 수도꼭지가 달린 새 아파트로 이사해도 수돗물의 석회 농도는 그대로라, 헹구면 여전히 하얀 얼룩이 남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이 세대가 찾은 탈출구는 식기세척기입니다. 식기세척기는 고온의 물로 세척하고, 린스제가 석회 얼룩까지 막아줍니다. 영국 35세 미만 가구에서는 열 집 중 일곱 집 가까이 식기세척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터키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석회 성분이 높은 물을 장기간 섭취하면 담석증(Cholelithiasis) 발생률이 높아집니다. 담석증이란 담낭이나 담관 안에 돌처럼 굳은 덩어리가 생기는 질환으로, 경수 지역에서 유독 발생 빈도가 높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공통된 경험입니다. 석회수 문제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장기적인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특정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약: 영국 세제는 잔류물이 체내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설계된 제품이며, 젊은 세대는 식기세척기를 통해 석회수·헹굼 논쟁 자체를 우회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국 설거지처럼 세제를 헹구지 않으면 진짜 건강에 괜찮은가요?

A. 영국 보건당국과 EU CLP 규정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주방 세제는 접시에 극미량의 잔류물이 남는 상황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접시 표면에 남는 세제막이 건조되어 섭취되는 양은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없는 허용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다만 소화기관이 민감한 분에게는 드물게 가벼운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도 있으므로, 본인의 상황에 맞게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영국 수도꼭지가 왜 두 개로 나뉘어져 있나요?

A. 19세기 영국에서 온수는 다락방 탱크에 저장해 보일러로 데우는 방식으로 공급됐는데, 이 탱크가 제대로 밀폐되지 않아 오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깨끗한 냉수와 오염 가능성이 있는 온수가 수도꼭지 안에서 섞이지 않도록 두 개로 분리하는 법을 만들었고, 이 원칙이 1999년 법률로 굳어졌습니다. 오래된 주택일수록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Q. 영국 수돗물 석회 성분이 높으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A. 일반 가정에서는 연수기(Water Softener)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연수기란 이온 교환 방식으로 물 속의 칼슘·마그네슘 이온을 제거해 석회 침착을 줄여주는 장치입니다. 전기포트나 커피머신에는 석회 제거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방식을 많이 씁니다. 최근 젊은 세대는 식기세척기의 린스제를 활용해 석회 얼룩 문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Q. 한국 수돗물은 왜 석회 문제가 없나요?

A. 한국은 국토 대부분이 화강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강암은 석회암처럼 물에 칼슘 성분을 쉽게 녹여내지 않기 때문에 수돗물 경도가 낮고 석회 침착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제가 해외에서 생활하다 귀국했을 때 우리나라 수돗물의 깨끗함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 수돗물 수질은 상위권에 속합니다.

 

결론

제가 처음 영국식 설거지를 봤을 때 느낀 감정은 단순히 "찝찝하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있는 맥락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것이 단순한 위생 불감증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분리형 수도꼭지 구조, 경수(硬水) 문제, 살인적인 에너지 요금, 기업의 제품 설계까지 다섯 가지 이상의 요인이 겹겹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경제와 환경이 남긴 흔적입니다.

우리나라는 화강암 지대 덕분에 석회수 걱정 없이 수돗물을 쓸 수 있고, 에너지 구조나 배관 문제도 상대적으로 훨씬 낫습니다. 해외에서 직접 생활해보면 이 차이를 피부로 느낍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애국심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 편의의 차이입니다. 영국 생활이나 석회수 대처법에 관심이 있다면, 연수기 설치나 식기세척기 활용 방식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참고: https://youtu.be/xADP45BZpAM?si=Hvz7GZqEJmMQyOTD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그냥 어른들의 미신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 하나가 그날 하루 전체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이게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잣말이 뇌의 정보 필터를 바꾸고, 그 필터가 쌓여 결국 인생의 방향까지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제 경험과 뇌과학 연구를 함께 엮어 정리해봤습니다.

 

긍정마인드

뇌는 왜 혼잣말에 반응하는가 — 망상활성계의 원리

일반적으로 혼잣말은 그냥 중얼거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특정 날 아침에 "오늘도 뭔가 꼬이겠지"라고 중얼거리고 나면, 실제로 하루 종일 작은 실수들이 유독 눈에 더 잘 들어왔습니다.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기분 좋게 시작한 날은 똑같이 실수를 해도 흘려넘기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뇌의 구조와 연결된 이야기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뇌 안쪽 깊숙이 자리한 망상활성계(RAS, Reticular Activating System)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망상활성계란 우리가 하루에 수백만 개씩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중에서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만 골라 의식 위로 올려주는 뇌의 정보 필터를 의미합니다. 뇌가 모든 정보를 다 처리하려 하면 즉시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망상활성계가 문지기처럼 서서 무엇을 통과시킬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새 차를 구입할 때입니다. 특정 차종을 사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길거리에서 그 차가 유독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경험, 아마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세상에 그 차가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망상활성계가 그 차를 '중요한 정보'로 분류해 걸러서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혼잣말은 바로 이 망상활성계에게 오늘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조용히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요약: 망상활성계(RAS)는 뇌의 정보 필터로, 혼잣말이 이 필터의 기준을 설정해 하루 동안 무엇을 눈에 띄게 할지 결정한다.

 

인생을 같은 자리에 멈춰 세우는 세 가지 말

제가 이 부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설마 그 정도까지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도 이 세 가지를 습관처럼 쓰고 있었고, 그게 꽤 오랫동안 제 사고방식을 가두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는 "모르겠다"입니다. 뭔가를 물어봤을 때 "아, 모르겠는데요"라고 툭 잘라버리는 순간, 뇌는 사고 회로 자체를 꺼버립니다. 반면 "한번 찾아볼게요"라고 말하면 뇌는 계속 답을 탐색하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표현 하나의 차이지만, 뇌가 반응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할 수 없다"입니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거울 뉴런이란 우리가 어떤 말이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뇌가 그것을 마치 실제로 경험하는 것처럼 신체 반응으로 전달하는 신경세포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피험자들에게 "나는 강하다"고 말하게 한 뒤 근력을 측정하면 순간적으로 힘이 세지고, "나는 약하다"고 하면 근력이 떨어지는 결과가 실험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말이 인식을 넘어 몸까지 바꾼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알고 있다"입니다. 이게 가장 의외였습니다. 병원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의사일수록 특정 상황에서 흔한 질환을 오히려 더 많이 놓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런 증상, 나 몇 번 봤지"라는 생각이 앞서는 순간 새로운 디테일을 걸러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오래 알아온 사람의 말을 "어차피 맨날 하는 얘기지"라고 흘려듣다가 나중에 중요한 맥락을 완전히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 모르겠다 — 뇌의 사고 회로를 즉시 종료시켜 탐색 자체를 막아버린다
  • 할 수 없다 — 거울 뉴런을 통해 무능한 상태의 이미지를 온몸으로 퍼트린다
  • 알고 있다 — 학습 스위치를 꺼버려 새로운 정보와 디테일을 걸러낸다

이 세 단어가 무서운 이유는, 하루짜리 필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매일 같은 혼잣말을 반복하면 뇌는 매일 같은 것만 골라 보여주게 되고, 그게 몇 달, 몇 년 쌓이면 결국 인생 전체의 방향으로 굳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이건 의지력 문제가 아닙니다. 뇌는 원래 손해를 극도로 싫어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새로운 시도에서 틀릴 위험을 피하려 이런 말들에 자꾸 손을 뻗게 됩니다. 자책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요약: "모르겠다", "할 수 없다", "알고 있다" 이 세 단어는 뇌의 탐색·학습·실행 회로를 차단해 인생을 같은 자리에 반복적으로 고정시킨다.

 

3일 안에 뇌 필터를 바꾸는 실전 말하기 기술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다짐은 솔직히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의지만으로 뇌의 필터를 바꾸려 하면 이틀을 넘기기가 힘들더라고요. 뇌는 추상적인 다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언어 자극에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네 가지 방법은 그 원리에 맞게 설계된 것들이라, 실제로 적용해보니 체감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는 "그래도" 기술입니다. 부정적인 말이 나왔을 때 그 뒤에 "그래도"를 붙이는 것만으로 뇌는 반대 맥락을 자동으로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일이 꼬였다, 그래도 하나 배웠다"는 식입니다. 의지력이 필요 없고, 그냥 말 끝에 세 글자만 붙이면 됩니다.

두 번째는 자기 거리두기(Self-distancing) 기술입니다. 자기 거리두기란 1인칭 시점에서 벗어나 마치 다른 사람을 바라보듯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심리적 기법을 의미합니다. "나는 괜찮아" 대신 자기 이름을 불러 "민수야, 지금 잘하고 있어"라고 하면, 뇌에서 불안을 조율하는 편도체 활동이 가라앉고 침착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 영역이 오히려 활발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APA).

세 번째는 현재형으로 말하기입니다. "잘 될 거야" 같은 미래형보다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처럼 현재형으로 말해야 뇌가 그 상태를 즉각적인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다만 너무 허황된 현재형은 오히려 뇌가 거부하므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 범위 안에서 현재형을 쓰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골프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퍼팅 직전에 짧고 구체적인 혼잣말을 한 선수들이 심리적 피로 상황에서도 수행 능력이 덜 흔들리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Journal of Sport Psychology in Action).

네 번째는 타이밍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식사 직후, 그리고 잠들기 직전 하루 세 번을 지정해두는 방식입니다. 특히 잠들기 직전에 떠올린 말은 수면 중에 뇌가 기억을 공고화(Memory Consolidation)하는 과정에서 함께 처리됩니다. 여기서 기억 공고화란 뇌가 낮 동안 받아들인 정보를 잠자는 동안 정리하고 장기 기억으로 굳히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타이밍에 입력된 말이 다음 날의 필터 설정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요약: "그래도" 붙이기, 자기 거리두기, 현재형 말하기, 타이밍 고정 — 이 네 가지는 의지가 아닌 뇌의 작동 원리에 맞춘 실전 기술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혼잣말이 진짜로 하루에 영향을 미치나요, 아니면 그냥 기분 문제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기분 탓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망상활성계(RAS) 연구에 따르면 혼잣말은 뇌의 정보 필터 기준 자체를 바꾸기 때문에, 실제로 눈에 들어오는 정보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기분이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말이 필터를 설정하고 그 필터가 결과처럼 보이는 현실을 구성하는 구조입니다.

 

Q. "나는 무조건 잘 될 거야"처럼 긍정 확언을 반복하면 효과가 있나요?

A. 무조건적인 긍정 확언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뇌가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현실과 거리가 멀면 오히려 거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fMRI 연구에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혼잣말보다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인 현재형 표현이 더 안정적인 뇌 활동 패턴을 만들어냈습니다. 좋은 결과를 그리되 동시에 대비책도 챙기는 균형 잡힌 혼잣말이 더 실용적입니다.

 

Q. 혼잣말 습관을 바꾸는 데 실제로 얼마나 걸리나요?

A. 뇌의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 즉 뇌가 새로운 자극에 반응해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능력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생 전체의 필터를 뒤집는 데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제 경험상 타이밍을 정해 3일만 꾸준히 실천해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첫 감각이 달라지는 걸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Q. "모르겠다", "할 수 없다"는 말을 완전히 쓰면 안 되나요?

A. 완전히 금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탐색을 완전히 차단하는 마침표가 되느냐, 아니면 잠시 멈추는 쉼표가 되느냐입니다. "모르겠다, 한번 찾아볼게"처럼 뒤에 탐색 의지를 붙여주면 뇌는 사고 회로를 닫지 않습니다. 말 자체보다 그 말 뒤에 어떤 행동 방향이 따라오는지가 핵심입니다.

 

결론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미신이 아니라 뇌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원리라는 걸 정리하면서, 저는 꽤 오래된 제 말 습관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혼잣말 한 마디가 망상활성계(RAS)의 필터를 설정하고, 그 필터가 매일 쌓여 결국 인생의 방향을 굳히는 구조라는 것, 그리고 이게 의지 문제가 아니라 뇌의 설계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이번 글의 핵심입니다.

거창한 다짐보다 오늘 밤 잠들기 직전에 자신에게 건넬 말 한 마디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가장 작고 실질적인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 이 한 문장으로도 충분합니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 아침에 거울을 보는 표정이 먼저 달라질 것입니다.

참고: https://youtu.be/-oYkAO58LSE?si=3aaRSWvUuqgQSaqs

OECD 국가 중 우울증과 번아웃 발생률 1위.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그렇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열심히 사는데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저 역시 한동안 그 안에 있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장 인기 있던 강의를 만든 행복 연구자의 분석을 보면서, 문제가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행복

행복을 감정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행복 연구자 아서 브룩스 교수가 수업 첫날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돌아오는 답은 거의 같습니다. "말로는 못 하겠는데, 느끼면 알아요." 브룩스 교수는 이게 가장 흔한 오해라고 단언합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닙니다. 행복의 감정은 실제 행복이 있다는 증거일 뿐, 저녁 식사 냄새가 밥 자체가 아닌 것처럼 감정 자체가 행복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가 내린 과학적 정의는 세 가지 요소의 조합입니다. 향유(enjoyment), 만족(satisfaction), 의미(meaning). 여기서 향유란 일상에서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만족은 노력과 성취 뒤에 오는 충족감, 의미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갖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브룩스는 행복의 '거시영양소(macronutrient)'라고 표현했는데, 탄수화물·단백질·지방 중 하나가 빠지면 신체가 무너지듯 셋 중 하나라도 부실하면 행복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제가 주변을 보면서 느끼는 건, 한국인들이 향유와 만족을 그나마 추구하는 반면 의미 추구를 가장 약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가치 실현이 뭥미?" 같은 반응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말을 하면 현실을 모른다는 눈총을 받습니다. 그런데 브룩스의 데이터는 이 의미 없이는 나머지 두 가지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요약: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향유·만족·의미 세 요소의 조합이며, 의미 추구가 빠지면 나머지도 무너진다.

 

서열문화가 만드는 구조적 고립

한국이 OECD 우울·번아웃 1위라는 데이터(출처: OECD Health at a Glance)를 보고 브룩스 교수는 "성과가 높은 문화일수록 그에 따른 비용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하게 됩니다. 단순히 '열심히 사는 부작용'이 아니라, 관계 구조 자체가 사람을 고립시키도록 설계된 게 아닐까 하고요.

한국 사회는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그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서열을 매깁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위아래를 따집니다. '우리'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정작 연대감은 희박하고, 같은 무리 안에서도 굳이 서열을 나눠 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람을 새로 만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이와 직업부터 묻는 문화는, 관계 맺기의 시작점을 '사람'이 아닌 '서열 파악'으로 설정해 버립니다.

번아웃(burnout)이란 단순한 피로가 아닙니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과도한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될 때 동기·에너지·효능감이 함께 고갈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체 피로와 달리 쉰다고 바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서열 경쟁으로 에너지를 소진하는 구조라면, 아무리 주말에 쉬어도 번아웃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이·직업으로 서열부터 확인하는 문화
  • '우리'를 강조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다시 비교·경쟁이 반복되는 구조
  •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운 사회 분위기로 인한 만성적 긴장 상태
  • 관계를 맺되 그 관계에서 진짜 안도감을 느끼기 어려운 역설
요약: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서열 경쟁을 내재화한 구조가 관계를 단절시키고 번아웃을 만성화한다.

 

성공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이유

브룩스 교수는 자신도 11년간 CEO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코너 오피스에 들어가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데이터도 그걸 지지하지 않고 제 경험도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CEO의 지배적인 감정은 고독(loneliness)과 분노(anger)라는 겁니다. 여기서 고독이란 단순히 혼자인 상태가 아니라, 자신을 직함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관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변에 사람은 넘쳐나지만 진짜 친구는 없는 역설이죠.

이 대목이 저는 꽤 크게 와닿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 궤도에 오른 사람들의 관계망을 보면, 브룩스가 구분한 '리얼 프렌드(real friend)'와 '딜 프렌드(deal friend)'의 차이가 유독 선명합니다. 딜 프렌드란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동안만 유지되는 실용적 관계를 말합니다. 리얼 프렌드는 반대로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그냥 좋아서 만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성과 중심 사회에서는 딜 프렌드가 리얼 프렌드처럼 포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SNS 팔로워는 잘 키우는데 스스로를 아는 친구가 없는 상황이 비단 CEO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저도 어느 시점부터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브룩스가 강조한 해법은 단순합니다. 대학 시절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하라고요. 사업 인맥이 아니라 아무 이해관계 없이 만났던 그 사람들 말입니다. 제 경우엔 그 조언을 실제로 따라해본 적이 있는데, 처음엔 어색했지만 결국 그게 가장 에너지 소모가 없는 관계더라고요. 리얼 프렌드를 유지하는 게 사치가 아니라 장기적 생산성의 기반이라는 브룩스의 주장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요약: 성공할수록 딜 프렌드만 늘고 리얼 프렌드가 줄어드는 구조가 고독을 심화시키며, 이는 행복의 핵심 토대를 무너뜨린다.

 

행복한 사람들의 4가지 공통점, 한국에서 왜 실천이 어려운가

브룩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행동 패턴은 네 가지입니다. 신앙 또는 삶의 철학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 가족 관계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 리얼 프렌드를 갖는 것, 그리고 가치를 창출하고 타인을 섬기는 일로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른바 '믿음·가족·우정·일'이라는 네 기둥입니다.

솔직히 이 목록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과 얼마나 충돌하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신론이 늘고 삶의 철학보다 실용적 지식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가족에 대한 이상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추세, 우정을 가꿀 시간 여유의 부재, 그리고 '가치 창출'보다 생존이 급선무인 노동 환경까지. 네 기둥 중 온전히 세워지기 어려운 조건이 구조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의미추구(meaning-seeking)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의미추구란 자신의 행동이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기여한다고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어도 됩니다. "내 일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타인을 돕기 전에 나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이 감각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행복 유전율(happiness heritability)에 대한 연구도 참고할 만합니다. 행복 유전율이란 행복 수준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비율을 의미하는데, 쌍둥이 연구 등에 따르면 약 50%가 유전적으로 설명됩니다(출처: NCBI, Lyubomirsky et al.). 나머지 50%는 상황과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전이 절반을 결정한다 해도, 나머지 절반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여지를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핵심입니다.

요약: 행복한 사람의 4가지 조건이 한국 사회 구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많으나, 유전 외 50%는 여전히 선택 가능한 영역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한국이 OECD 중 우울증 1위라는 게 사실인가요?

A. OECD Health at a Glance 보고서는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과 번아웃 관련 지표가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는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제시해 왔습니다. 단순히 '열심히 사는 나라'의 부작용으로 보기엔 수치 격차가 너무 큽니다. 경쟁 구조와 관계 단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Q. 행복이 유전이라면 노력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닌가요?

A. 행복 유전율이 약 50%라는 연구 결과는 '절반은 타고난다'는 의미이지 '전부 유전이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머지 50%는 행동과 환경으로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영역입니다. 알코올 의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음주를 삼가는 것처럼, 유전을 아는 것이 오히려 행동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Q. 리얼 프렌드와 딜 프렌드를 어떻게 구분하나요?

A. 가장 간단한 기준은 '이 사람이 내 사업이나 커리어와 무관해져도 계속 만날 것인가'입니다. 딜 프렌드는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멀어지지만, 리얼 프렌드는 서로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그냥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브룩스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주변에 딜 프렌드만 남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Q. 의미추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생계가 급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요?

A. 브룩스는 플러머든 교수든 CEO든 상관없이 "내 일이 실제 가치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 자체가 의미추구라고 말합니다. 거창한 사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생계를 위한 일이라도 그 안에서 작은 기여의 감각을 찾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한국인이 불행한 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살면서 정작 행복을 구성하는 세 요소, 즉 향유·만족·의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장 마지막 순위로 미뤄두기 때문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거기에 서열문화가 관계를 단절시키고, 리얼 프렌드 대신 딜 프렌드만 쌓이는 구조가 고독을 심화시킵니다.

바꾸기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출발점은 있습니다. 오래 연락 못 했던 진짜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보거나, 아침 첫 한 시간만큼은 SNS 없이 자신과 보내거나, 지금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닿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 작은 변화들이 쌓였을 때 실제로 달랐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ZqAKpNlSXgM?si=0UaEvih2D5lMv8PV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네타냐후라는 인물을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MIT 출신 건축학도가 중동 전체를 뒤흔드는 지도자가 됐다는 사실이 쉽게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17년 집권, 뇌물 재판, 국제 체포 영장, 그리고 여전히 총리 집무실에 앉아 있는 한 사람. 이 한 사람을 이해하면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의 뿌리가 보입니다.

 

네타냐후

엔테베 작전, 한 청년의 인생을 통째로 바꾼 날

제가 이 인물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멈춰 선 장면이 있습니다. 1976년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공항입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민간인 승객을 인질로 잡았고,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이 4,000킬로미터를 날아가 작전을 성공시킵니다. 사예렛 마트칼이란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로, 우리나라로 치면 707특임대에 해당하는 조직입니다. 수천 명이 지원해도 수십 명만 선발될 정도로 문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완벽한 작전에서 단 한 명의 대원이 전사합니다. 그 이름이 요나탄 네타냐후, 베냐민의 친형이었습니다. 제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형이 나라를 위해 영웅적으로 죽었고, 거리 이름에 형의 이름이 붙고, 교과서에 실리고, 영화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 무게를 동생으로서 평생 지고 산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는 컨설턴트 양복을 영영 걸어놓고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내 형은 테러와 싸우다 죽었다. 나는 그 뜻을 이어가겠다." 이 한 문장이 그의 정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 됩니다. MIT와 하버드 MBA를 거쳐 세계 3대 컨설팅 기업에서 일하던 엘리트가, 조국 안보를 평생 과업으로 삼게 된 출발점이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 나라의 국민 정서를 이해하려면 2,000년 넘게 이어진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먼저 봐야 합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란 고국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온 민족 집단을 의미합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이라는 참혹한 역사, 그리고 수천 년간 나라 없이 떠돌던 기억을 가진 민족에게 "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정치 선호가 아닙니다. 생존 본능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맥락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네타냐후라는 인물을 단순히 "독재자"나 "영웅" 중 하나로만 규정해버리는 함정에 빠집니다.

요약: 친형의 전사라는 개인적 비극이 네타냐후를 엘리트 컨설턴트에서 안보 중심 정치인으로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처가 그런 리더십에 대한 민심의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장기집권의 비결, 공포 관리와 아브라함 협정

17년 집권이라는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도 솔직히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가능한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하나의 패턴이 보였습니다. 이른바 전쟁 정치(War Politics)입니다. 전쟁 정치란 안보 위기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전략으로, 외부 위협이 부각될수록 유권자들이 기존 지도자를 유지하려는 심리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부패 의혹이 터지는 시기마다, 가자지구에서 로켓이 날아왔고 이스라엘 언론은 온통 안보 이슈로 뒤덮였습니다. 가짜 위기가 아니라 진짜 위기였기에 국민들은 매번 그 불안에 반응했습니다. 네타냐후는 공포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공포를 조금 더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이 지점이 그의 정치가 무서운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분명한 성과도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 재무장관 시절 그는 이스라엘 경제 구조를 근본부터 뜯어고칩니다. 공기업 민영화, 세제 개편, 정부 지출 축소. 반발이 거셌지만 밀어붙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지금 인구 900만 명의 나라가 세계적 스타트업 강국으로 불리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출처: World Bank, Israel Country Overview).

2020년에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성사시킵니다. 아브라함 협정이란 수십 년간 이스라엘을 국가로도 인정하지 않던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공식 수교를 맺은 외교 협정입니다. 백악관 잔디밭에서 악수하는 장면은 제가 뉴스에서 직접 봤는데,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큰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중동 외교 지형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게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 실감했습니다. 미국 공화당과 30년간 쌓아온 인맥, 완벽한 미국식 영어, 이 두 가지가 만들어낸 외교적 결실이었습니다.

  • 전쟁 정치: 안보 위기를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하는 반복 전략
  • 경제 개혁: 공기업 민영화와 세제 개편으로 스타트업 강국의 기반 마련
  • 아브라함 협정: 적대 관계였던 아랍 3국과의 역사적 공식 수교
  • 미국 공화당 인맥: 30년에 걸쳐 축적된 정치·외교 자산
요약: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은 안보 불안을 정치 자원으로 쓰는 전쟁 정치와, 경제 개혁 및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실질적 성과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입니다.

 

전쟁정치의 끝, 그리고 국제 체포 영장

제가 이 인물을 공부하면서 가장 섬뜩했던 대목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2023년 초, 네타냐후는 사법부 정비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밀어붙입니다. 사법부 정비(Judicial Overhaul)란 사법부가 행정부의 결정을 견제하는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판사 임명권을 사실상 총리 쪽으로 집중시키는 일련의 법 개정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이를 사법 쿠데타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이때 네타냐후는 뇌물, 사기, 배임 세 가지 혐의로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현직 총리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법원과 검찰의 힘을 빼버리려 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역사에서 반복됩니다. 권력이 길어질수록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점점 더 제도 밖으로 나가는 패턴입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합니다. 사망자 1,200명, 인질 250명.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에게 가해진 단일 사건 최대 인명 피해였습니다(출처: United Nations, Middle East Situation Overview). 제가 직접 당시 뉴스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 기습이 단순한 군사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이스라엘 정보 장교들의 경고가 있었고, 이집트 정보기관도 사전에 통보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총리실의 관심은 사법 쿠데타 밀어붙이기와 자신의 재판 방어에 쏠려 있었습니다.

잔디깎기 전략(Lawn Mowing Strateg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위협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군사력으로 억제한 뒤 다시 놔두는 방식으로,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관리 가능한 위협으로 유지해온 네타냐후의 대하마스 전략을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30년간 잔디만 깎다가, 뿌리가 땅 전체를 뒤덮어버린 결과였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는 것이 오히려 네타냐후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점도 이때 보였습니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 뇌물 재판과 10월 7일 안보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이 동시에 쏟아집니다. 결국 2024년 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에게 전쟁 범죄 및 반인도 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합니다. ICC 영장이 효력을 지닌 120개국 이상에서 그가 발을 딛는 순간 체포될 수 있습니다. 한때 노벨 평화상이 거론되던 인물이 국제 수배자 명단에 오른 것입니다.

요약: 뇌물 재판을 피하려는 사법 무력화 시도, 10월 7일 기습 참사, 끝나지 않는 전쟁, 국제형사재판소 체포 영장까지—전쟁정치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네타냐후는 왜 17년이나 총리를 할 수 있었나요?

A.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 국가들과 실질적인 적대 관계에 놓인 환경에서, 안보 불안을 정치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쟁 정치 전략이 반복적으로 효과를 냈습니다. 여기에 경제 개혁 성과와 아브라함 협정 같은 외교 업적, 미국 공화당과의 탄탄한 인맥이 더해져 장기집권이 가능했습니다. 2,000년 디아스포라 역사를 가진 민족의 생존 본능이 강한 지도자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측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Q. 아브라함 협정이 뭔가요? 왜 중요한가요?

A.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가 공식 수교를 맺은 외교 협정입니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조차 하지 않던 아랍 국가들이 대사관을 열고 항공편을 연결한 것이어서, 중동 외교 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든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협정의 정신이 서안지구 정착촌 확장 문제로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Q. 10월 7일 하마스 기습을 왜 사전에 막지 못했나요?

A. 이스라엘 정보 장교들과 이집트 정보기관의 사전 경고가 있었지만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총리실의 관심이 사법부 정비 입법과 자신의 뇌물 재판 방어에 집중돼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잔디깎기 전략으로 수십 년간 하마스를 근본 해결 없이 관리해온 것도 구조적 원인으로 꼽힙니다.

 

Q. 국제형사재판소 체포 영장이 실제로 효력이 있나요?

A. ICC 체포 영장은 ICC 로마 규정에 가입한 120개국 이상에서 효력을 갖습니다. 네타냐후가 해당 국가를 방문하면 이론적으로 체포 의무가 발생합니다. 다만 미국처럼 ICC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어 실제 집행 여부는 각국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결론

이번에 네타냐후라는 인물을 오랜 시간 파고들면서 제가 느낀 건 하나였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잘못된 방향으로 집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사람이 살아 있는 교과서라는 것입니다. 엔테베 작전에서 형을 잃고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동기로 시작한 사람이, 수십 년 후 자신의 재판을 피하기 위해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구조에 갇혀버린 모습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저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지정학적 현실을 단순히 선악 구도로 재단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주변 환경에서 외교 천재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한 나라의 지도자 선택이 그 나라의 10년, 20년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견제 장치가 왜 소중한지, 지금 이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강하게 답해주고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GCTBPeO0u5o?si=DHHXE0gTn6Gweq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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