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옷을 거의 안 샀습니다. 의류, 신발, 가방 — 딱히 참는다는 느낌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지갑이 닫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소비를 줄이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겁니다. 배달음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 살림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월급은 제자리인데 지갑은 왜 자꾸 얇아지는지, 그 구조를 직접 겪으면서 정리해봤습니다.

월급은 늘었는데, 왜 쓸 돈은 줄었을까 — 소득 착시
솔직히 처음엔 저도 이게 기분 탓인 줄 알았습니다. 통장 숫자는 분명 늘어 있는데, 막상 뭘 사려고 하면 손이 멈추는 그 느낌. 알고 보니 이건 기분 탓이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가처분 소득의 착시(Disposable Income Illus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처분 소득이란 세금과 필수 지출을 제외하고 실제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을 뜻합니다. 명목상 소득은 올랐어도 물가와 고정 지출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출처: 통계청이 2026년 5월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48만 원으로 1년 전보다 2.4% 늘었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 소득 증가율은 0.4%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상 제자리입니다.
더 살펴보면, 소득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공적 이전소득 — 즉 연금이나 각종 지원금 — 에서 나왔습니다. 공적 이전소득은 7.8%, 사적 이전소득은 14.6% 뛰었는데, 정작 근로소득 증가율은 0.3%였습니다. 일해서 버는 돈은 거의 그대로인데 숫자만 올라 보이는 구조입니다.
저도 자영업을 하면서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매출을 늘리려면 마진을 줄여야 하고, 몸은 두 배로 힘든데 통장에 남는 건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멈추고 소비 자체를 줄이니, 제품 구매에 묶이는 돈도 줄고 몸도 편해졌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버는 것보다 안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배달앱보다 먼저 가져가는 것들 — 고정비 덫
배달음식 한 끼를 망설이게 된 건, 사실 배달비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이미 절반 이상의 행선지가 정해져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습니다.
고정비 덫(Fixed Cost Trap)이란 대출이자·관리비·보험료처럼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소득 대부분을 선점해버려 자유 소비 여력 자체가 사라지는 구조를 말합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가계 대출 잔액은 1,927조 원에 달했습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만 약 1,024조 원입니다. 평균 금리 5%만 적용해도 이자 부담이 연간 96조 원 수준입니다. 이 돈이 결국 월급에서 나옵니다.
제가 직접 가계부를 들여다봤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목욕탕도 끊고, 다이소 가위 두 개로 셀프 커트를 시작했고, 한 달에 열흘은 냉장고를 파먹으며 버팁니다. 세차도 직접 합니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해보니까 별 것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줄이고 나서 남은 돈으로 회나 일식을 가끔 제대로 먹는 쪽이 훨씬 만족스러웠습니다.
소비가 줄어드는 순서를 보면 이유가 보입니다. 끊을 수 없는 것들 — 대출이자, 보험료, 통신비, 관리비 — 은 손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미룰 수 있는 것부터 포기합니다.
- 1단계: 배달음식·외식 축소
- 2단계: 술자리·카페 줄이기
- 3단계: 의류·미용·여가 지출 감소
- 4단계: 택시·주말 외출 제한
저도 이 순서를 그대로 밟았습니다. 여행과 쇼핑 외식 배달을 줄이고, 의류·신발·가방은 3년째 거의 구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엔 뭔가 포기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이게 제 생활 방식이 됐습니다.
우리 동네 식당이 사라지고 있다 — 골목상권
벌이는 예전이랑 거의 똑같은데, 배달음식은 오르고, 막상 시키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너무 낮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도 냉동 국물에 이것저것 넣어 직접 끓여 먹기 시작했습니다. 해보니까 맛있었습니다. 요리에 버릇이 들고 나니, 오히려 시켜먹는 음식이 돈이 아까워서 안 시키게 됐습니다.
이런 선택이 모이면 골목 반대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외식업 폐업률(Restaurant Closure Rate)은 2024년 기준 15.82%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더 주목할 부분은 2025년 1분기 수치입니다 — 폐업한 음식점이 개업한 음식점보다 732곳 더 많았습니다. 문을 닫는 가게가 새로 여는 가게를 처음으로 앞지른 겁니다(출처: 국세청 통계연보 기반 분석).
이 흐름이 무서운 건 대형 상권보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동네, 지방 중소도시 골목에서 더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일수록 손님 한 명의 선택이 그대로 매출에 반영됩니다. 20년, 30년 그 자리를 지키던 사장님이 어느 날 조용히 짐을 빼는 일이 지금 전국 골목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비 위축이 자영업 폐업을 부르고, 폐업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다시 소비를 줄이는 악순환(Deflationary Spiral) — 여기서 악순환이란 한 번 빠지면 외부 충격 없이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제적 하강 고리를 뜻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발표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 보고서에서도 이 구조가 단기 부양책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60대의 소비성향 하락폭이 가장 컸습니다 — 69.3%에서 62.4%로, 10년 사이 약 7포인트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득이 늘었다는데 왜 실제로 쓸 돈은 줄어드는 건가요?
A. 소득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근로소득이 아닌 연금·지원금 같은 이전소득에서 나온 탓입니다. 여기에 물가 상승을 반영하면 실질 소득 증가율은 0.4%에 불과합니다. 명목 숫자는 올라도 실제 살림은 제자리라는 게 가처분 소득 착시의 핵심입니다. 혹시 이 차이를 체감한 적 있으신가요?
Q. 배달음식 대신 직접 해먹으면 실제로 얼마나 절약이 되나요?
A. 제 경험상 한 끼 배달이 최소 1만 5천~2만 원인데, 같은 재료로 냉장고를 활용해 끓이면 3천~5천 원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한 달에 10일만 냉장고를 파먹어도 월 10만 원 이상 차이가 납니다. 처음엔 귀찮게 느껴지지만 요리가 습관이 되면 오히려 시켜먹는 게 아깝게 느껴집니다.
Q.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가 도입되면 자영업자에게 유리해지지 않나요?
A. 단순히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동국대 이석 교수 연구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수수료 상한제 도입 시 플랫폼의 마케팅 할인이 대폭 줄어들면서 외식 시장 매출이 최대 7조 8천억 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됐습니다. 과거 미국 일부 주에서도 수수료 상한제 시행 후 배달비가 오히려 폭등한 사례가 있습니다. 좋은 취지의 규제가 반드시 현장 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고정비를 줄이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A. 저는 먼저 자동이체 목록을 전부 꺼내서 가입 시점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구독 서비스, 중복된 보험이 꽤 있었습니다. 금융감독원 무료 보험 점검 서비스나 통신사 요금제 재조정부터 손대면 매달 수만 원씩 바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론
배달앱을 끄는 건 절약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소득 착시, 고정비 덫, 골목상권 붕괴라는 세 겹의 구조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제가 3년 동안 옷 한 벌 안 사고, 목욕탕을 끊고, 셀프 커트를 하면서 느낀 건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 소비를 줄이니 마음이 편해졌고, 줄어든 소비 덕분에 오히려 진짜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고정비부터 한 번 들여다보시기를 권합니다. 자동이체 목록, 안 쓰는 구독, 중복 보험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체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니던 동네 단골 가게 한 곳만이라도 한 달에 한 번 찾아주는 것 — 그게 지금 이 시기에 이웃이 이웃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