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저는 반복해서 읽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같은 페이지를 네 번씩 읽어도 다음 날이면 기억이 흐릿해졌고, 그게 제 머리가 나쁜 탓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문제는 방법이었습니다. 뇌과학 연구들이 밝힌 학습의 핵심은 '얼마나 오래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뇌에 새기느냐'였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었습니다.

 

학습법

집중력도 연료가 있다 — 스케줄링의 뇌과학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더 오래, 더 많이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믿어 왔는데, 700명의 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 그것도 혼자, 방해 요소를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였습니다.

이 결과를 이해하려면 아데노신(adenosine)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아데노신이란 뇌에서 집중과 각성 상태를 조절하는 신경조절물질로, 쉽게 말해 집중력의 연료 역할을 합니다. 이 물질은 무한정 생산되지 않아서, 하루 동안 무작위로 소모하면 정작 공부할 때 연료가 바닥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엘리트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것이 바로 공부 시간의 사전 스케줄링이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 공부할 시간대를 미리 고정해 두고, 그 시간까지는 불필요한 집중력 소모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핸드폰을 끄거나 와이파이를 차단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리 연락이 안 될 것임을 알렸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 사흘은 어색했지만 그 이후로는 해당 시간이 되면 몸이 먼저 집중 모드로 전환되는 느낌이 생겼습니다.

게임을 잘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제가 새벽에 가장 집중이 잘 됐던 이유도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해 요소가 없고 정해진 시간에 앉는 패턴이 반복됐으니까요. 그 패턴을 공부에 옮겨 적용했을 때 처음으로 집중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 공부 시간은 하루 두 번 이상, 매일 같은 시간대로 고정한다
  • 공부 직전까지 스마트폰·소셜미디어 등 집중력 소모 요인을 최소화한다
  • 주변 사람들에게 해당 시간에 연락이 안 된다고 미리 알려 외부 방해를 차단한다
  • 최소 3일 이상 같은 루틴을 반복해야 뇌가 해당 시간을 '집중 모드'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요약: 집중력의 원료인 아데노신을 아끼려면 공부 시간을 미리 고정하는 스케줄링이 반복 읽기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읽기만 하면 왜 잊어버릴까 — 셀프테스트의 실제 효과

제가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버린 습관이 '여러 번 반복 읽기'였습니다. 당시엔 그게 최선인 줄 알았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면 분명히 본 내용인데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는데, 반복 읽기는 수동적 학습(passive learning)에 해당합니다. 수동적 학습이란 정보를 눈으로 따라가기만 할 뿐 뇌가 그 정보를 인출하려는 능동적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두 그룹에게 같은 자서전을 읽게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그 자서전을 네 번 반복해서 읽었고, 두 번째 그룹은 딱 한 번 읽은 뒤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으며 내용을 스스로 떠올리는 셀프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최종 기억 정확도 테스트에서 한 번 읽고 셀프테스트를 한 그룹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출처: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더 흥미로운 연구도 있었습니다. 세 그룹으로 나눠 6개월에서 1년 뒤 장기 기억력을 측정했는데, 네 번 완독한 그룹보다 단 한 번 읽고 세 번의 셀프테스트를 한 그룹의 장기 기억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공부 횟수가 아니라 해당 정보에 능동적으로 노출된 횟수가 핵심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목차만 훑으며 각 챕터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소환해 보는 방법인데, 단어 하나하나까지 기억 못 해도 됩니다. 어떤 흐름이었는지, 어떤 논리였는지를 목차 키워드로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억이 훨씬 오래 유지됐습니다. 셀프테스트를 할 때 틀려도 괜찮습니다. 틀린 뒤 정답을 확인하는 그 순간에 오히려 기억 회로가 더 강하게 고정됩니다.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뇌의 해마(hippocampus)는 새로운 정보를 학습한 직후 셀프테스트를 할 때 평상시보다 20~30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란 기억의 단기 저장과 장기 기억으로의 전환을 담당하는 뇌 구조물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끝나고 바로 5분만 셀프테스트에 투자하는 것이 다음 날 한 시간을 더 읽는 것보다 효과적입니다(출처: Nature — Memory Research).

요약: 반복 읽기보다 한 번 읽고 즉시 셀프테스트를 하는 능동적 학습이 장기 기억 보존율을 월등히 높인다.

 

가르치고, 목표를 세워라 — 능동학습이 완성되는 순간

저도 처음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어렵게 배운 걸 남한테 알려주면 내가 손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어 회화를 익히던 시절, 제가 배운 표현을 직장 동료에게 설명해 주려고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몰랐던 빈틈이 드러났습니다. 설명하다 막히는 부분이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었고, 그걸 다시 찾아보면서 학습이 완성됐습니다.

이 방식을 학습과학에서는 능동적 정교화(active elaboration)라고 부릅니다. 능동적 정교화란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기억 회로가 더 정밀하게 연결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외운 것을 꺼내는 셀프테스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인출 작업입니다.

목표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의대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단순히 "시험을 잘 보려고"가 아닌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꾸겠다는, 훨씬 크고 야심찬 이유였습니다.

제 경우엔 그 목표가 게임 캐릭터였습니다. 27살에 울면서 공부하다가 문득 떠올린 생각이었는데, 제 인생 자체를 RPG 캐릭터라고 가정하고 자격증 하나하나를 레벨업 아이템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웃긴 것 같지만 그 프레임 하나가 모든 걸 바꿨습니다. 공부가 고통이 아니라 업그레이드가 됐고, 지루했던 영어 문법도 "이걸 장착하면 해외 클라이언트와 소통 가능"이라는 목표로 연결되니 집중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년 만에 영어·일본어 회화와 기사 자격증을 동시에 취득한 것도 사실 그 목표 덕분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딴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나쁜 신호가 아닙니다. 집중이 흐트러지고 다시 돌아오는 그 반복이 실제로 집중력 신경 회로를 강화하는 훈련 과정입니다. 중요한 건 딴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고 다시 돌아오는 속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요약: 배운 것을 남에게 설명하는 능동적 정교화와 장기적 목표 설정이 결합될 때 학습 효율이 가장 높아진다.

 

자주 묻는 질문

Q. 셀프테스트는 공부 직후에 해야 하나요, 아니면 하루 지나고 해야 효과적인가요?

A. 연구 결과를 보면 공부 직후 바로 셀프테스트를 하고, 이후 최종 시험 직전에 한 번 더 하는 패턴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뇌의 해마가 학습 직후 가장 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단 5분이라도 공부 직후에 시간을 내는 것이 다음 날 한 시간 복습보다 낫습니다.

 

Q. 셀프테스트에서 답을 많이 틀려도 괜찮은가요?

A. 오히려 40~50%만 맞춰도 효과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정답률이 아니라 정보를 떠올리려 애쓰는 과정 자체입니다. 틀린 뒤 정답을 확인하는 그 순간에 기억 고착이 더 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틀리는 것을 두려워해서 테스트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학습 효율을 낮춥니다.

 

Q. 하루 공부 시간이 짧아도 진짜 효과가 있나요?

A. 의대생 연구에서 상위권 학생들의 하루 공부 시간이 최대 서너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단, 그 시간 동안 방해 요소를 완전히 차단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했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긴 시간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것보다, 짧더라도 아데노신이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 셀프테스트와 결합한 집중 학습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공부가 지루해서 집중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나요?

A. 제 경험상 이건 콘텐츠보다 프레임의 문제였습니다. 공부 내용 자체를 재미있게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내 장기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상기하면 집중도가 달라집니다. 또한 ADHD를 가진 사람도 흥미로운 주제라면 장시간 집중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학습 내용이 자신에게 왜 중요한지를 의도적으로 되뇌이는 것만으로도 뇌의 각성 상태가 점진적으로 올라갑니다.

 

Q. 배운 걸 남에게 설명하면 내가 손해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설명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얻습니다. 설명하려고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몰랐던 빈틈이 드러나고, 그걸 채우는 과정이 가장 높은 수준의 학습입니다. 상대방이 설명을 듣고 얻는 것보다, 내가 설명을 준비하고 전달하며 얻는 기억 고착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결론

정리하면, 학습에서 가장 치명적인 착각은 '오래 읽을수록 잘 외운다'는 믿음입니다. 제가 20대 중반까지 공부를 못했던 이유도,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케줄링으로 아데노신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읽은 직후 셀프테스트로 해마를 자극하고, 배운 것을 능동적 정교화 방식으로 타인에게 설명하는 이 세 가지를 조합했을 때 학습 효율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 당장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읽은 내용을 덮고 5분만 눈을 감아 보세요. 기억나는 것, 안 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뇌에 다른 신호가 전달됩니다. 제가 게임 캐릭터 레벨업이라는 프레임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듯, 작은 방법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참고: https://youtu.be/Hp7eL3Mjp4Y?si=8wsn0vqB0z5P7y3m

사법고시를 패스한 지인의 교재를 한번 빌려 본 적이 있습니다. 형광펜 한 줄 없이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었는데, 당시에는 "이 사람이 공부를 제대로 한 건가" 싶어 의아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은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부분만 골라서 읽고, 덮고 나서는 혼자 처음부터 논리를 재구성해보는 방식을 썼다고 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 평생 고수했던 방식과 거의 똑같았습니다. 형광펜을 안 쳤다는 게 대충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더 치열하게 싸운 흔적이었던 겁니다.

 

진짜 이해 — 익숙함과 이해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공학 관련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전자기파의 횡파(transverse wave) 특성을 설명하시는데, 솔직히 그때도 느꼈습니다. 이분도 사실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하시는 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횡파란 파동의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진동하는 파동을 말하는데, 당시 수업에서는 그 개념을 공식으로만 외우게 했지, 왜 전자기파가 횡파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주는 교수님은 거의 없었습니다.

공식을 외워서 시험을 쳤습니다. 그리고 딱 시험 끝나는 순간, 전부 사라졌습니다. 새하얗게. 이게 기억력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법 자체가 잘못된 거였습니다.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 말하는 '친숙함 착각(familiarity illus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여러 번 읽어서 눈에 익숙해진 상태를 뇌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입니다. 형광펜을 그으면 그 구절이 시각적으로 강조되고, 뇌는 그걸 중요하게 등록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막상 덮고 나서 설명하려 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간극이 바로 친숙함과 진짜 이해 사이의 거리입니다.

파인만이 남긴 말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한 마디가 모든 걸 정리합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아니라, 덮고 난 뒤에 얼마나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느냐가 진짜 척도입니다. 출처: Science Direct — 학습과 메타인지 관련 연구에서도 단순 반복 독서보다 자기 설명(self-explanation) 방식이 기억 보존율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요약: 익숙함은 이해가 아닙니다. 덮고 나서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아는 겁니다.

 

백지 조립 — 텅 빈 종이 앞에서는 아무도 거짓말을 못 합니다

공학 수업에 새로 오신 교수님 한 분이 첫 수업에서 한숨을 쉬셨습니다. 2년 넘게 전공을 배운 학생들인데, 정작 개념의 흐름을 스스로 설명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그분은 수업 절반을 우리가 배웠어야 할 내용을 다시 가르치는 데 썼습니다. 땡땡이치던 애들도 그 시간만 되면 강의실이 꽉 찼습니다. 왜냐면 그 교수님은 공식이 아니라 원리를 설명했거든요.

파인만이 프린스턴 박사 과정에서 쓴 방식이 바로 이 원리 조립입니다. 책을 몇 페이지 읽고 나면 바로 덮었습니다. 형광펜도, 밑줄도, 여백 메모도 없이 그냥 덮습니다. 그 뒤 텅 빈 백지를 꺼내서 기억에만 의존해 방금 읽은 내용의 논리를 처음부터 써 내려갔습니다. 당연히 막힙니다. 막히는 지점이 정확히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이 방법을 메타인지(metacognition)적 자기 진단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인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형광펜을 칠하는 행위는 메타인지를 전혀 자극하지 않습니다. 반면 백지 위에 논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즉각적으로 "내가 어디서 막혔는가"를 드러냅니다. 막힌 지점만 다시 찾아 읽고, 또 덮고, 또 조립합니다.

파인만의 룸메이트는 형광펜으로 빼곡하게 칠해진 교재를 들고 다녔습니다. 파인만의 교재는 거의 새 책이었습니다. 시험 결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광펜을 얼마나 많이 칠했는지는 이해의 깊이와 전혀 무관합니다.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 경험상 이건 거의 확실합니다. 형광펜은 나중에 복습할 때 눈에 띄게 하는 도구로는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광펜을 치는 행위 자체가 이해를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 책을 몇 페이지 읽은 뒤 바로 덮는다
  • 백지에 기억만으로 논리를 재구성해본다
  • 막힌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 부분만 다시 찾아 읽는다
  • 참고 없이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한다
요약: 백지 위에서의 논리 재조립이 메타인지를 자극하고, 진짜 이해와 가짜 친숙함을 즉시 구분해줍니다.

 

무지 노트 — 모르는 것을 목록으로 만들면 공부가 날카로워집니다

당시 대학에서는 "대학에서 배운 건 취직하면 하나도 못 써먹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습니다. 그게 그냥 자조적인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저도 취직하고 나서 회사에서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왜 그랬을까 돌아보면, 대학에서는 진도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목표였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데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인만이 1960년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늘 들고 다닌 노트의 제목은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었습니다. 자신이 배운 걸 자랑하는 노트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ignorance)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노트였습니다. 몇 달씩 풀리지 않는 항목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고, 해결되면 줄을 그어 지웠습니다. 이 무지 노트가 그의 독서 커리큘럼이었습니다. 양자역학 교재를 1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라, 노트에 "교환 관계(commutation relation)를 아직 모르겠다"고 적혀 있으면 그 내용이 있는 챕터만 찾아가서 읽는 식이었습니다.

교환 관계란 양자역학에서 두 물리량을 측정하는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성질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개념입니다.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의 수학적 토대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념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교재 300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입니다.

이렇게 모르는 것 중심으로 읽으면 이미 아는 내용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교재 한 권을 겨우 다 뗐을 때, 파인만은 자신의 무지 목록 항목 열두 개를 일곱 권의 책을 뒤져가며 지워버린 상태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건 지능의 차이가 아닙니다. 무엇을 공략할지 알고 있었느냐의 차이입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 교육심리학 저널에서도 목표 지향적 학습(goal-directed learning)이 비구조적 학습 대비 장기 기억 전환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인만은 로스 앨러모스(Los Alamos)에서 홀로 칠판 앞에 서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소리 내어 강의했습니다. 이를 설명 기반 학습(elaborative interrogation)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쳐보는 방식입니다. 설명하다가 막히는 지점이 바로 자신의 무지가 뚫린 곳입니다. 이 방법으로 그는 챌린저(Challenger)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 조사에서 항공우주공학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경력의 엔지니어들이 놓친 O링(O-ring) 결함을 단 며칠 만에 찾아냈습니다. O링이란 로켓 연료 탱크 이음새를 밀폐하는 고무 부품으로, 저온에서 탄성을 잃어 가스가 누출된 것이 폭발의 직접 원인이었습니다.

요약: 모르는 것을 목록으로 기록하고, 그것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같은 시간에 훨씬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인만 독서법은 처음 배우는 사람도 할 수 있나요?

A. 선행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조금 어렵습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려면 최소한의 개요는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목차를 훑어 전체 구조를 파악한 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항목 하나를 골라 집중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방법은 없고, 상황에 맞게 조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 형광펜 칠하는 게 정말 아무 소용이 없나요?

A. 형광펜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제 경험상 형광펜은 이해 도구가 아니라 복습 탐색 도구로는 유용합니다. 문제는 형광펜을 치는 행위가 이해를 대체한다고 착각할 때입니다. 형광펜을 치고 나서 책을 덮고 스스로 그 내용을 재구성해보는 단계가 뒤따른다면, 형광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도구가 됩니다.

 

Q. 백지 조립 방식으로 공부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나요?

A. 단기적으로는 분명히 느립니다. 파인만의 룸메이트가 30페이지 읽을 때 파인만은 10페이지밖에 못 넘겼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시험 직전에 처음부터 다시 복습하는 시간이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총 시간으로는 오히려 효율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서, 직접 비교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무지 노트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공부 중인 주제에서 누군가 물어봤을 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것 같은 항목 세 개만 적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게 출발점이 됩니다. 중요한 건 "내가 배운 것" 목록이 아니라 "내가 아직 모르는 것" 목록을 만드는 습관입니다.

 

결론

사법고시를 통과한 지인의 깨끗한 교재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그게 게으름이 아니라 전략이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분이 파인만의 전기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같은 원리에 도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아는 것과 익숙한 것을 스스로 구분할 줄 알았던 겁니다.

이 공부법을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공부 방식은 상황과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핵심만큼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설명하지 못하는 건 아직 모르는 겁니다. 그 기준 하나만 붙잡고, 책을 덮고 나서 스스로 재구성해보는 습관을 들이면, 지금보다 훨씬 날카로운 공부가 가능해질 겁니다. 저도 아직 그 방향으로 가는 중입니다.

참고: https://youtu.be/0cWAqEMtkYM?si=I3AFlTVFVStI_uk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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