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한동안 '저 사람은 감정이 없는 건가' 싶은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가도 좀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틀렸습니다. 그 평온함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었고, 감정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화가 안 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쏟아내는 순간 발생하는 사회적·에너지적 손실을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차이를 몰랐습니다.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의 실체, 제가 오해했던 것들
주변에 이런 사람이 한 명쯤 있습니다. 회의 중에 의견 충돌이 생겨도 목소리 톤이 흔들리지 않고, 칭찬을 들어도 기분이 붕 뜨지 않으며, 동기가 먼저 승진해도 "잘됐다"고 진심으로 끝내는 사람. 저는 오랫동안 이런 사람들을 두 가지로 오해했습니다. 원래 성격이 좋거나, 아니면 감정이 없거나. 둘 다 틀렸습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사람들의 뇌에서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편도체(Amygdala)의 과잉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이 발달해 있습니다. 여기서 편도체란 외부 자극을 위협으로 감지하고 즉각적인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뇌 부위로, 흔히 '감정의 경보기'라고 불립니다. 이 경보기가 울리는 속도보다 전전두엽이 조절하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 그게 이 사람들의 정체입니다(출처: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분 중에 회사생활 7년차쯤 공황장애가 왔다가 마음 다스리는 법을 수련하면서 완치된 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살아오면서 특정한 경험과 인식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게 이 분을 보면서 와닿았습니다.
- 칭찬에 무덤덤한 건 무감각이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 충분한 확인이 있기 때문
- 비교를 안 하는 건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내적 동기의 방향이 바깥이 아닌 안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
- 갈등에서 목소리가 안 올라가는 건 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조절 속도가 반응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
- 실수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건 대범해서가 아니라, 실수 하나로 자기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기준이 있기 때문
핵심은 하나, 기준이 바깥이 아닌 안에 있다
제가 이 사람들을 오래 관찰하면서 발견한 공통점은 딱 하나였습니다. 자기 밖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는 것.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 것도, 비교하지 않는 것도, 거절을 편하게 하는 것도,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지 않은 것도 전부 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결정 이론이란 인간의 동기가 외부 보상이 아닌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할 때 심리적 건강과 지속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이론입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의 실험에서 외적 보상을 받은 집단이 보상이 사라진 뒤 오히려 동기가 더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게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맞습니다. 남의 평가에 기분이 달렸던 시절, 칭찬이 없는 날은 유독 의욕이 없었습니다(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Official Site).
또 하나 제가 주목한 개념은 자기 개념 명료성(Self-Concept Clarity)입니다. 자기 개념 명료성이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일관되고 명확한가를 나타내는 심리적 지표입니다. 이 명료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실수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실수 하나가 나라는 사람 전체를 규정할 수 없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편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저런 성향이 심한 사람들은 관계에 깊이는 있어도 끊는 것도 빠른 편이었습니다. 내면의 정리정돈이 쉬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 딱 맞는데, 이건 냉정한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상처를 남들보다 더 많이 극복하다 보니 생긴 경계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겠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실전 적용
일반적으로 정서적 안정을 키우려면 명상이나 심리 상담 같은 거창한 방법을 떠올리기 쉬운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는 극도의 훈련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머릿속에서 삭제하는 방식을 오래 써봤습니다. 의도적으로 긍정을 선택하고, 부정이 들어올 자리를 없애버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엔 의지로 누르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로 부정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속도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이게 쌓이면 평온함이 됩니다.
다만 저는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고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감정을 억압하는 것과 감정을 처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억압(Repression)은 감정을 무의식 속에 눌러두는 것이고, 처리(Processing)는 감정이 올라왔음을 인식하고 뇌가 반응하기 전에 한 박자 쉬는 것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건 후자입니다.
실전에서 제가 확인한 것들은 이렇습니다.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는 게 먼저입니다. 흔들리는 걸 느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그 감정을 잠깐 바라보는 습관. 그리고 인생이 남에게 감정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인식. 다른 할 일도 많고, 내 에너지는 유한합니다. 이 두 가지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흔들리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나의 기준이 건강하게 자리 잡혀 있을 때 주변 환경에 흔들리기 쉽지 않고,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완벽하게 안정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흔들린 다음에 얼마나 빨리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느냐, 그 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사람은 원래 타고나는 건가요?
A. 일반적으로 성격은 타고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서적 안정성은 다릅니다. 신경과학 연구에서 전전두엽의 편도체 조절 능력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 발달한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제가 경험한 분들 중에도 공황장애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뒤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Q. 감정을 안 드러내는 사람이 관계에서 냉정해 보이지 않나요?
A.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감정을 처리하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은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적 폭발에 같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빠르게 정리되는 편입니다. 다만 관계를 끊는 결정도 빠른 경향이 있어서, 냉정하다기보다는 내면의 정리정돈이 빠른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Q. 비교를 안 하는 게 진짜 가능한 건가요, 의지로 되는 건가요?
A. 의지로 비교를 억누르려 하면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결정 이론에 따르면 내적 동기가 강한 사람일수록 외부 기준에 덜 반응하는데,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동기의 방향이 바뀐 결과입니다. 제가 확인한 건, 자기 페이스와 리듬이 분명해질수록 남의 타임라인이 자연스럽게 덜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Q. 거절을 잘하면 관계가 나빠지지 않나요?
A. 일반적으로 거절하면 관계가 나빠질 것 같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억지로 수락하고 속으로 불만이 쌓이는 관계보다, 솔직하게 상황을 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관계가 장기적으로 더 편안하게 유지됐습니다.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일수록 불안 수준이 낮다는 연구 결과와도 일치합니다.
결론
정서적 안정성은 감정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도 자료를 정리하면서 바깥 평가에 꽤 흔들리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단톡방 반응이 없으면 불안하고, 회의에서 한 말이 자기 전에 떠오르는 경험, 제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더 내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 흔들린 다음에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저는 그게 훈련된다고 믿습니다. 긍정을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부정적인 자극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이 쌓이면, 어느 순간 그게 기본값이 됩니다. 아직 많이 흔들린다면 그건 아직 자기만의 기준이 만들어지는 중인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