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지인 부부 이야기입니다. 남편 연봉이 1억 8천을 찍던 시절에도 집에 몇십만 원짜리 가방 하나 없었습니다. 쌍둥이가 아홉 살이던 겨울에 산 차를 올해도 탑니다. 아이들은 이제 스물넷이 됐으니 차가 15년째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세 아이 집 등기를 전부 마쳤습니다. 소득이 올랐는데도 생활을 그대로 둔 사람이 결국 어디까지 가는지 직접 목격한 셈입니다.

생활 인플레이션, 왜 소득이 올라도 여유가 없을까
심리학에서는 소득이 오를 때 지출이 자동으로 따라 오르는 현상을 생활 수준 인플레이션(lifestyle inf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생활 수준 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오르듯 소비 기준이 소득을 쫓아 저절로 높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른 것은 느껴지는데, 그만큼 나아졌다는 감각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현상은 생각보다 훨씬 교묘합니다. 승진하면 어울리는 사람이 바뀌고, 어울리는 사람이 바뀌면 가는 식당이 바뀝니다. 새로운 준거 집단(reference group)이 생기는 것인데, 여기서 준거 집단이란 자신의 소비 기준을 비교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이 집단의 평균이 내 소비 기준이 되는 순간, 지출은 조용히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한 번 올라간 생활은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경제학에서 이를 톱니바퀴 효과(ratchet effect)라고 하는데, 톱니바퀴 효과란 소비 수준이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성질, 즉 올리기는 쉽지만 내리기는 고통스러운 현상을 가리킵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금융용어700선). 한 번 넓은 집에 살고 나면 이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됩니다. 소득이 줄어드는 은퇴 직후에 이 톱니바퀴가 가장 잔인하게 작동합니다.
결과적으로 연봉 3천일 때 남는 돈이 없었던 사람이 연봉 6천이 돼도 남는 돈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소득이 두 배가 됐는데 자유는 그대로인 것입니다.
- 생활 수준 인플레이션: 소득 상승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지출 증가
- 준거 집단 교체: 승진 후 어울리는 사람이 바뀌며 소비 기준도 상향
- 톱니바퀴 효과: 한 번 올린 생활 수준은 내리기가 극도로 어려움
- 손실 회피 심리: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훨씬 크게 느끼는 인간의 본능
톱니바퀴를 피한 사람들의 머릿속 구조
지인 부부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이 사람들이 절약에 의지력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그 톱니바퀴에 올라타지 않은 것입니다. 비결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기준이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가 필요하냐'에 있었습니다.
심리학에는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심리적 회계란 같은 돈이라도 출처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는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말합니다. 보너스는 공돈처럼 느껴져서 쉽게 쓰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씀씀이를 안 늘리는 사람들은 이 꼬리표를 거꾸로 씁니다. 오른 월급을 처음부터 없던 돈으로 취급하고, 인상분만큼 자동이체를 먼저 걸어버립니다. 참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눈앞에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조를 설계한 것이지 의지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인 부부도 그랬습니다. 아이 둘을 서울로 대학을 보내니 연간 4천만 원이 들었고, 거기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제하면 월 지출 규모는 연봉이 오르든 말든 큰 틀에서 비슷하게 유지됐습니다. 필요가 바뀌지 않았으니 지출도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진짜로 구매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선택권입니다. 생활비가 낮을수록 일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집니다. 월 200만 원으로 사는 사람은 1억으로 4년 이상을 버티지만, 월 500만 원으로 사는 사람은 같은 1억으로 1년 반밖에 안 됩니다. 같은 자산인데 자유의 크기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인 부부가 아이 셋 집 등기를 칠 수 있었던 것, 그 통장에 그만한 돈이 남아 있었던 것도 결국 이 간격이 20년 넘게 쌓인 결과입니다.
재정적 자유, 보이지 않는 곳에 쌓인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이 지인 부부를 알았을 때 저는 '저러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람들도 비슷하게 봅니다. 이사 안 가는지, 차는 왜 안 바꾸는지 자주 물어봅니다. 외식도 거의 안 하고, 해봤자 만 원 선이니 누군가에게는 궁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세 아이 집 등기를 모두 마친 것을 보고 나서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재정적 자유(financial independence)란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자유의 크기가 연봉이 아니라 소득과 지출의 간격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개인 재무 연구기관 NBER(전미경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저축률이 높을수록 재정적 독립 달성 시점이 기하급수적으로 앞당겨집니다(출처: NBER,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연봉 1억을 다 써버리면 자유가 없고, 연봉 5천이라도 3천으로 살면 자유가 생깁니다.
제 경우를 돌아보면, 2018년에 차를 사고 지금까지 안 바꿨습니다. 그 사이에 월세 수입이 생겼고, 지방에 건물 한 채와 상가 하나를 매입했습니다. 차를 바꾸는 대신 그 차액이 자산으로 쌓인 셈입니다. 10만 킬로 중고차도 관리만 잘 하면 새 차 같고, 30만 킬로까지 타면 된다고 생각하다 보니 비싼 차에 큰돈을 쓰는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 돈을 투자하면 어휴, 얼마인데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에는 딱히 아끼지 않습니다. 비싼 장비를 지르지는 않지만, 탑클래스 강습을 받는 데는 씁니다. 남에게 보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삶의 질에 쓰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지출을 안 올리는 것입니다. 다만 그게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곳에 재정적 자유가 한 끼 분량씩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득이 올랐는데 생활을 안 올리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
A.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씀씀이를 안 늘리는 사람들도 올리는 데는 올립니다. 다만 더 좋은 침대, 건강 검진, 강습비처럼 남 눈에 안 띄는 곳에 씁니다. 겉으로 생활이 그대로처럼 보일 뿐, 자기 삶의 질은 조용히 높아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Q. 가족이 함께 동의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A. 맞습니다. 혼자 안 올리려 하면 집안에서 짠돌이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지인 부부도 주변에서 이사 안 가는지, 차는 왜 안 바꾸는지 자주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안 올린 돈이 몇 년 뒤 어떻게 되는지 숫자로 보여주면, 가족도 같은 편이 됩니다. 한 사람만 참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방침이 되는 것입니다.
Q. 톱니바퀴 효과를 막으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A.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른 월급이 생활비 통장에 들어오기 전에 인상분만큼 자동이체를 먼저 거는 것입니다. 손에 쥐어보기 전에 빠져나가게 만들면, 참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는 돈이 됩니다. 의지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Q. 40~50대에 씀씀이를 안 올리는 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A. 이 시기는 소득 정점과 지출 정점이 겹치고, 동시에 은퇴가 10년 안팎으로 다가오는 시점입니다. 소득 정점에서 생활을 최고조로 올려놓으면, 은퇴 후 소득이 줄었을 때 생활은 그대로라 고통이 매우 커집니다. 지금 안 올려두면 은퇴가 절벽이 아니라 그냥 계단 하나가 됩니다.
결론
지인 부부의 통장은 지금 텅장이 됐습니다. 세 아이 집 등기를 치면서 상당 부분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텅장이 되기까지 수십 년을 쌓아온 과정을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같은 차, 같은 동네, 같은 식당. 그 반복이 결국 아이 셋이 서울에서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냈습니다.
소득과 지출의 간격이 자유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 그 간격은 더 많이 버는 것보다 덜 올리는 것으로 더 빠르게 벌어진다는 것. 저도 2018년에 산 차를 지금도 타면서, 그 사이 생긴 월세 수입과 자산으로 은퇴가 눈앞에 보이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승진하고도 같은 점심을 먹는 그 사람, 생각보다 훨씬 멀리 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