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후공정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저는 그냥 "조립 마무리 단계"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근데 공부하면 할수록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후공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HBM4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패키징과 테스트 양쪽 모두에 대규모 투자 사이클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고, 그 한복판에서 의미 있는 수혜 구조를 가진 국내 소부장 종목들이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EMIB와 PSK홀딩스: TSMC 코워스의 한계를 넘는 새 판
제가 처음 어드밴스드 패키징(Advanced Packaging) 공부를 시작했을 때, 솔직히 TSMC의 코워스(CoWoS) 기술만 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코워스란 GPU 같은 로직 칩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HBM을 나란히 붙여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2.5D 패키징 기술입니다. AI 가속기의 심장이라고 불릴 만큼 엔비디아 GPU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기술이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GPU 성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칩 자체의 덩치가 계속 커지고 있는데, 이게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한 겁니다. 웨이퍼 한 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코워스 패키지 수가 줄어들면서 수율이 떨어지고,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Interposer) — 여기서 인터포저란 로직 칩과 HBM을 전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얇은 실리콘 기판을 말합니다 — 특유의 열 변형 문제까지 겹쳤습니다. TSMC 라인은 이미 만성적인 공급 부족 상태인데, 칩은 점점 커지고 있으니 고객사들이 대안을 찾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인텔의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입니다. EMIB란 실리콘 인터포저 전체를 깔지 않고, 로직과 HBM이 만나는 연결 지점에만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실리콘 브릿지를 심는 방식입니다. 판 전체를 실리콘으로 채울 필요가 없으니 재료비가 줄고, 칩이 아무리 커져도 연결다리만 추가하면 되니 확장성이 훨씬 유리합니다. 인텔은 이미 미국 뉴멕시코와 말레이시아에 105억 달러를 넘는 자금을 쏟아부으며 EMIB 전용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출처: Intel Newsroom).
공장이 지어지면 자연스럽게 장비가 들어갑니다. 제가 관련 리포트를 뜯어보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이름이 PSK홀딩스였습니다. 이 회사는 이미 TSMC의 코워스 라인에 리플로우(Reflow) 장비 — 리플로우란 솔더 범프를 녹여 칩을 기판에 접합하는 열처리 공정 장비입니다 — 를 납품해 전체 매출의 40~5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습니다. 거기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의 HBM 패키징 라인에도 같은 장비를 공급하고 있었죠.
흥미로운 건 EMIB 라인에는 리플로우 장비 외에 디스크림(Die Singulation) 장비까지 추가로 납품되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단일 장비 의존도를 벗어나 제품 포트폴리오가 확장되는 셈입니다. TSMC 코워스 증설, 메모리 3사 HBM 패키징 투자, 거기에 인텔 EMIB 공장까지 더해지면 고객사와 매출 채널이 동시에 넓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 TSMC 코워스: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 기반 2.5D 패키징 → 물리적 한계 도달
- 인텔 EMIB: 연결부에만 소형 실리콘 브릿지 삽입 → 확장성·비용 효율 우위
- PSK홀딩스: 코워스·HBM·EMIB 세 축 모두에 리플로우 장비 납품 가능
- EMIB 라인 추가 시 디스크림 장비 수요까지 신규 발생 → 수익 구조 다변화
테스터와 메모리 오사트: 이중 투자 사이클이 만드는 기회
제가 테스터 쪽을 처음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테스트 장비가 뭐 그리 크게 바뀌겠어"라고 가볍게 봤습니다. 그런데 HBM4 시대로 넘어오면서 테스트 공정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HBM4는 이전 세대보다 구조가 훨씬 복잡하고 단가도 훨씬 비쌉니다. AI 가속기 모듈 하나의 가격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HBM 한 개에서 불량이 나오면 붙어 있는 GPU까지 통째로 폐기해야 하는 구조니 제조사 입장에서 테스트를 더 빡빡하게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삼성전자의 전략이 재미있습니다. 국내 공장(천안·온양)은 HBM4 전용 라인으로 빠르게 재편하고, 기존에 범용 D램을 검사하던 장비는 해외(베트남 등)로 이전하는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즉 국내에는 고속 웨이퍼 테스터(Wafer Tester)를 새로 깔고, 해외에는 범용 메모리 테스트 라인을 새로 세팅해야 합니다(출처: Samsung Semiconductor). 테스터 장비 수요가 국내외에서 동시에 터지는 구조입니다.
이 흐름에서 수혜를 받는 국내 상위 3개 업체가 와이씨, 디아이, 엑시콘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 곳을 비교하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엑시콘의 CLT(Combined Load Test) 방식이었습니다. CLT란 번인(Burn-in) 테스트 — 칩을 고온·고전압 환경에 노출해 초기 불량을 솎아내는 공정 — 와 저주파 검사를 별도 챔버에서 순차적으로 진행하던 것을, 챔버 하나로 통합해 한 번에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공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이동 시간을 없애니, 공장 한 평이 아쉬운 지금 상황에서 채택될 유인이 강합니다.
제가 이 구조를 더 들여다보면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엑시콘은 장비를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칩 규격이 바뀔 때마다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인 인터페이스 보드(Interface Board)를 지속적으로 공급합니다. 장비를 한번 설치해 두면 이후 보드 교체 수요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구독형 매출 구조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설치 장비가 늘어날수록 보드 매출도 자동으로 쌓이는 구조이니, 상방이 열려 있으면서 하방은 기존 설치 기반이 지지해 주는 형태입니다.
메모리 오사트(OSAT — 반도체 후공정 외주 서비스 업체를 의미하는 용어로, 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의 약자입니다) 영역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HBM4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다 보면, DDR5 같은 범용 D램의 패키징·테스트·모듈 조립은 외주로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기준으로 2~3조 원 규모의 모듈 조립 물량이 외주화될 것으로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고, 베트남 거점의 한양디지텍, 인도 거점의 드림텍, 필리핀 거점의 SFA반도체가 이 물량을 나눠 받을 후보로 거론됩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런 기대감 선반영 국면에서는 실적으로 증명된 회사를 우선 보는 게 맞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곳 중 올해 상반기 실적이 작년 연간 수준에 근접한 곳은 한양디지텍 하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후공정이 전공정보다 중요해진 이유가 뭔가요?
A. 전공정은 회로를 미세하게 새기는 단계인데, 미세화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성능을 더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여러 칩을 하나로 묶는 어드밴스드 패키징이 부상했습니다. HBM처럼 D램을 수직으로 쌓아 GPU 옆에 붙이는 구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시스템 전체 성능을 결정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Q. EMIB와 코워스는 경쟁 관계인가요, 보완 관계인가요?
A. 기술 구조로만 보면 경쟁 관계가 맞습니다. 다만 TSMC 코워스의 공급 부족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인텔 EMIB는 대안 공급처로서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두 기술의 경쟁이 오히려 2.5D 패키징 시장 전체를 더 빠르게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PSK홀딩스, 엑시콘, 한양디지텍 중 어디가 제일 안전한 투자처인가요?
A. 세 곳 모두 성격이 다릅니다. PSK홀딩스는 고객사 다변화와 매출 채널 확장 면에서, 엑시콘은 반복 매출 구조와 추세 강도 면에서 각각 강점이 있습니다. 한양디지텍은 세 곳 중 현재 실적 증명이 가장 빠르게 나오고 있는 곳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는, 실적이 확인된 회사부터 접근하는 방식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Q. 번인 테스트가 왜 HBM4에서 더 중요해지나요?
A. HBM4는 GPU 옆에 물리적으로 붙어서 함께 판매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HBM 하나에서 불량이 나오면 수천만 원짜리 AI 가속기 모듈 전체를 폐기해야 합니다. 불량 하나의 피해 규모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진 만큼, 출하 전 번인 테스트를 더 엄격하게 돌릴 수밖에 없고 그만큼 테스트 장비 수요도 함께 커집니다.
결론
제가 이번 공부를 마치고 나서 느낀 건, 2023~2024년에 한미반도체로 대표되던 후공정 1라운드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때는 전공정 중심에서 후공정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변화였다면, 지금은 그 후공정 안에서 다시 한번 레벨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HBM4로의 전환, EMIB의 부상, 테스트 라인의 국내외 동시 재편이라는 세 가지 변화가 맞물리면서 소부장 업체들에게 새로운 수혜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미 주가가 상당히 올라온 종목들도 있는 만큼, 단기 급등 구간을 무리하게 따라잡기보다는 상승 추세가 유지되는 흐름 안에서 실적 확인을 병행하며 차분히 접근하는 게 맞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아직 실적 증명이 덜 된 오사트 쪽은 수주 공시가 나오는 시점을 기준 삼아 비중을 판단하는 것이 저한테는 더 맞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