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 한 식당이 소주를 한 병에 10원에 팔았습니다. 홍보용 이벤트가 아니라 손님이 없어서 그렇게까지 간 거였습니다. 저도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설마'했는데, 전국 주점 수가 2018년 5만 곳에서 지금은 2만 8천 곳으로 절반 가까이 사라진 걸 보고 나서는 그냥 수긍이 됐습니다. 술집이 망한 게 아니라 술 문화 자체가 조용히 바닥부터 꺼지고 있었던 겁니다.

1인당 알코올 소비량, 숫자로 보면 분명해집니다
한국인의 1인당 순수 알코올 소비량(Pure Alcohol Consumption)은 2015년 9.1리터로 정점을 찍은 뒤 지금까지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여기서 순수 알코올 소비량이란 술의 종류에 상관없이 그 안에 든 실제 알코올 성분의 양만 따로 환산한 수치입니다. 소주든 맥주든 와인이든 동일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어서, 전체 음주 습관의 변화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지표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수치 안을 세대별로 뜯어보면 훨씬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2024년 기준으로 20대가 하루에 마시는 알코올의 양이 60대보다 적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게 그냥 인식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30대 중반인 저도 20대 초반엔 친구들과 자주 술자리를 가졌는데, 지금은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으니까요.
공식 조사에서도 19세에서 29세 사이 청년 중 술을 아예 안 마시거나 한 달에 한 번 이하로 마시는 비율이 56%에 달한다고 나옵니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절반이 넘는 청년이 사실상 비음주자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대 차이가 만들어낸 진짜 이유
술값이 올라서 안 마신다는 얘기가 많은데, 저는 이게 절반짜리 설명이라고 봅니다. 소주 한 병에 5천 원, 6천 원 하는 가격은 50대, 60대한테도 똑같이 비싸진 거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의 음주량은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가격이 진짜 이유였다면 세대를 가리지 않고 같이 줄었어야 맞는 논리인데, 실제로는 2030만 쏙 빠진 겁니다.
제 생각에는 음주 강요 문화(Coercive Drinking Culture)가 사라진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음주 강요 문화란 회식자리에서 원하지 않아도 마셔야 하는 분위기, 선배가 따라주면 받아야 하는 압박 같은 것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예전엔 이게 '사회생활'로 포장돼 있었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회식 자체가 사라지고 2차, 3차 문화도 크게 꺾였습니다. 한번 없어져보니 사람들이 알아버린 거죠. 이거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요.
실제로 공공질서 위반 음주 건수가 2016년 약 2만 2천 건에서 2023년 6천 건으로 7년 만에 72% 감소했습니다(출처: 경찰청). 취할 때까지 마시고 길에서 사고 치는 술자리 자체가 그만큼 줄었다는 뜻입니다.
부모 세대를 보면서 자란 영향도 빠질 수 없다고 봅니다. 알코올에 절여져 살다가 건강이 망가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2030이 술에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된 겁니다. 저도 지인 어른들이 술 때문에 건강을 상하는 걸 보면서 점점 술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끊은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 회식 문화 약화 + 2차·3차 자리의 소멸
- 코로나 이후 비대면 생활이 정착되며 음주 강요 문화 급감
- 부모 세대의 음주 폐해를 직접 목격한 학습 효과
- 운동, OTT, 자기계발 같은 대체 여가의 등장
- 개인주의 강화로 '억지로 어울리는 비용'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
주류 시장의 양극화, 가운데가 텅 비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 전체 술 소비량이 생각만큼 안 줄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이 될까요. 5060이 장소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회식도 없고 술집 가격도 비싸지니까 마트에서 싸게 사다가 집에서 반주로 마시는 방식으로 바뀐 거예요. 밖에서 안 보일 뿐, 여전히 마시고 있는 겁니다.
2030도 아예 술을 끊은 건 아닙니다. 마시는 술의 종류가 바뀐 겁니다.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소주보다 위스키나 하이볼이 비싸도 '총 지출'로 따보면 생각보다 싸게 먹히거든요. 소주 10병 시키며 2차까지 달리면 훨씬 나가는데, 좋은 위스키 한 잔 홀짝이고 끝내면 오히려 더 저렴한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소주가 싸서 소주를 마시던 시대는 실제로 끝나가고 있습니다.
주류 시장 양극화(Premiumization)가 진행 중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옵니다. 프리미엄화란 저가 대량 소비는 줄고, 고가의 소량·고품질 소비가 늘어나는 시장 구조의 변화를 말합니다. 실제로 소주 출고량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위스키와 와인 수입량은 한때 크게 뛰었습니다. 싸게 많이 마시던 중간대가 텅 비고, 양쪽 끝만 남은 구조가 된 겁니다.
무알콜 맥주 시장도 이 흐름 안에 있습니다. 한 대형마트 기준으로 전체 맥주 중 무알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6%에서 최근 13%까지 올라왔습니다. 몇 년 만에 두 배가 된 거죠.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술자리의 분위기만 즐기고 싶은 수요가 그만큼 생긴 겁니다.
하이트진로가 흔들린 이유, 그리고 소주의 역설
국민 소주 '참이슬'을 만드는 하이트진로는 2025년 영업이익이 17.3% 감소했고, 결국 14년 만에 대표를 교체했습니다. 이게 그냥 인사 뉴스가 아닙니다. 100년 넘게 쌓아온 방식이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회사 스스로 인정한 신호입니다. 소주로 먹고 살던 회사가 소주 때문에 흔들린 겁니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았습니다. 특히 맥주 매출이 크게 무너진 영향이 컸습니다. 이걸 술집 반토막 숫자와 같이 놓고 보면, 단순한 경기 침체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분명해집니다.
재밌는 건, 정작 소주 자체는 국내에서 저물면서 해외에서는 역대 최고 기록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4년 소주 수출액이 처음으로 2억 달러를 돌파했고, 미국에서는 수출 1위 국가로 올라섰습니다. 딸기, 자몽 같은 과일 소주로 포장을 바꾸고, 취하는 술이 아니라 파티용 믹서 음료로 재포지셔닝(Repositioning)한 전략이 먹혔습니다. 재포지셔닝이란 기존 제품이 소비자 인식 속에서 갖고 있던 위치를 의도적으로 바꾸는 마케팅 전략입니다. 국내에서 '아저씨 술'로 굳어버린 이미지를 해외에서는 '트렌디한 과일 리큐어'로 완전히 다시 그린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결국 맥락의 문제입니다. 소주 특유의 그 씁쓸하면서도 깔끔한 끝맛을 모르면 술맛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는가 하면, 외국에서는 그 맛을 처음 접하는 젊은 층이 신선하게 느끼는 거죠. 같은 제품인데 어떤 이야기를 입히느냐에 따라 운명이 이렇게 갈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요즘 2030이 술을 안 마시는 게 정말 가격 때문인가요?
A. 가격은 방아쇠 중 하나일 뿐, 진짜 원인은 아닙니다. 5060도 똑같이 오른 소주값을 보고 있는데 그분들은 음주량이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회식 문화의 소멸, 개인주의 강화, 운동이나 OTT 같은 대체 여가의 등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Q. 한국 전체 술 소비량이 생각보다 안 줄었다는 건 왜 그런가요?
A. 5060 세대가 술집 대신 집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 싸게 사다가 반주로 마시는 방식으로 바뀐 거라, 밖에서는 안 보이지만 실제 소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줄인 양을 윗세대가 장소를 바꿔 그대로 채우고 있는 구조입니다.
Q. 소주가 국내에서 저무는데 해외에서 잘 팔리는 이유가 뭔가요?
A. 포장과 이야기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취하려고 마시는 저가 소주 이미지가 굳어버린 반면, 해외에서는 딸기·자몽 같은 과일 소주로 재포지셔닝해 파티용 가벼운 음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같은 제품도 어떤 맥락과 이야기를 입히느냐에 따라 시장 반응이 완전히 달라진 사례입니다.
Q. 무알콜 맥주 시장이 그렇게 빠르게 커지고 있나요?
A. 네, 수치로 보면 빠릅니다. 한 대형마트 기준 전체 맥주 중 무알콜 비중이 2021년 6%에서 최근 13%로 몇 년 만에 두 배가 됐습니다.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술자리의 분위기만 즐기고 싶은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시장이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결론
불 꺼진 호프집이 늘어나는 건 개인 사장님의 실패가 아니라, 술이 곧 관계이고 술이 곧 위로이던 시대가 조용히 저물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저도 그게 나쁜 일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퇴근하고 소주 말고는 마땅히 풀 데가 없던 시절을 지나온 세대가 "20년을 마셨는데 돌아보니 남는 게 없더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세대 탓보다는 그냥 그런 시절이었던 거구나 싶어집니다.
제 생각에는 술 시장이 통째로 망하는 게 아니라 얼굴을 바꿔가며 살아남는 중입니다. 취하려는 술은 줄고, 즐기려는 술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가 각 세대의 저녁을, 그리고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요즘 또래들이 나이 들면 당뇨가 줄고 대신 다른 생활습관병이 늘겠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술로 인한 질환은 줄어들 거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