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역학 연구원이 직접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환자에게는 샐러드를 권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 아이러니가 이 책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아, 이래서 내가 매번 작심삼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샐러드 이미지

정보가 넘쳐도 식단이 안 되는 이유

적색육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있고, 동시에 적색육이 철분과 비타민 B 공급에 필수적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와인 한두 잔이 심장에 좋다는 논문 옆에 술 한 모금도 뇌에 치명적이라는 논문이 나란히 존재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역학 연구(Epidemiology Study)입니다. 역학 연구란 특정 식품이나 행동이 집단 전체의 건강 지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코호트, 즉 장기간 추적 관찰을 통해 분석하는 연구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적색육을 생선으로 바꾼 집단은 사망률이 10% 낮아졌다"는 식의 통계 결과가 이 연구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결과를 접하면서도 "우리 할아버지는 매일 고기 드시고 90세까지 사셨다"는 개인 일화(anecdote)로 반박합니다. 집단 전체의 정규분포 곡선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 보는 연구와, 개인의 특수 사례는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도 말이지요.

저도 솔직히 이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탄수화물이 주범이라는 콘텐츠 보고 밥을 끊었다가, 다음 날 통곡물이 좋다는 콘텐츠 보고 다시 현미밥을 샀던 경험이 있습니다. 정보 자체가 내 편이 아닌 상황에서 의지만으로 버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게임이었던 겁니다.

  • 탄수화물 제한 vs. 통곡물 권장 — 같은 시기에 공존하는 상충 정보
  • 와인 소량 유익 vs. 음주 뇌 손상 — 둘 다 근거 있는 논문에서 나온 주장
  • 역학 연구의 집단 통계와 개인 일화는 비교 대상이 애초에 다름
요약: 정보가 많을수록 혼란이 커지는 이유는, 개별 연구가 맥락 없이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선악은 없다, 대체와 맥락이 전부다

저는 버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구도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버터는 나쁘다"가 아니라 "올리브유로 바꾸면 더 낫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흑백 논리와 스펙트럼 사고의 차이입니다.

마가린이 좋은 사례입니다. 1900년대 초반 식물성 지방을 고체화한 마가린은 건강식으로 각광받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연구에서 마가린 속 트랜스 지방(Trans Fat)이 문제였음이 밝혀졌습니다. 트랜스 지방이란 액체 식물성 기름을 수소화 공정으로 고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지방 형태로,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된 성분입니다. 2000년대 이후 트랜스 지방이 퇴출되면서 현대 마가린의 트랜스 지방 함량은 1% 미만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가린 = 독"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90년대의 낙인이 현재 제품에 그대로 적용되는 셈입니다.

술에 대해서도 저는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와인 한두 잔이 순환에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가 직접 따져보니 그 순환 효과를 원한다면 따뜻한 물 샤워나 스쿼트 열 개가 훨씬 확실하고 부작용이 없었습니다. 득실을 냉정하게 계산하면 실이 더 컸습니다. 음식의 이점만 따로 떼어 이야기하는 순간, 이미 맥락을 잃은 겁니다.

커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커피 속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가 잠재적 발암 물질임을 인정하면서도, 커피 자체는 발암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출처: 국제암연구소 IARC). 같은 기관에서 성분과 식품을 다르게 판정한 것입니다. 음식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걸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음식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무엇으로 대체하느냐와 얼마나 먹느냐의 맥락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환경설계가 식단 성공의 핵심인 이유

퇴근길에 샐러드를 먹겠다고 출근할 때 결심했다가 막상 퇴근하면 치킨을 시킨 경험, 저도 셀 수 없이 반복했습니다. 체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전두엽이 하루 종일 의사결정을 반복하면서 고갈된 것입니다. 이걸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뇌도 근육처럼 많이 쓰면 지치고, 지친 뇌는 가장 쉬운 선택지를 고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지를 소비하는 대신 환경을 세팅하는 방식이 훨씬 지속 가능합니다. 눈앞에 견과류와 냉동 블루베리가 있으면 그걸 먼저 집게 됩니다. 에너지 드링크 대신 블랙커피가 책상에 있으면 자동으로 블랙커피를 마십니다. 결정하는 행위 자체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냉동 브로콜리와 현미 즉석밥을 상시 구비해두는 것만으로 저녁 식사의 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요리할 에너지가 없어도 전자레인지 몇 분이면 끝나니까요. 완벽한 식단을 설계하려다 실패하는 것보다, 가장 쉬운 선택지를 건강한 것으로 바꿔두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의지와 환경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소 생활에서는 의지가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다만 의지에도 임계점이 있어서, 그 임계점을 넘어서면 물질적 환경이 행동을 결정합니다. 결국 그 임계점 이전에 환경을 미리 바꿔두는 것이 의지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먹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환경을 세팅하는 것도 모두 의지의 영역이니까요.

요약: 의지가 소진되기 전에 환경을 먼저 세팅해두는 것이 식단 유지의 가장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비건 식단이 최선인가, 그리고 적색육의 진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사례를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수십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영양 연구진을 고용해 자신의 식단을 설계한 브라이언 존슨(Bryan Johnson)의 식단이 결과적으로 100% 비건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원래 비건 성향이어서가 아닙니다. 현존하는 연구를 총망라한 결과가 그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입니다.

30대 이후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시즌 중 선택하는 식단도 대부분 같은 방향입니다. 적색육과 가공육,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을 제한하고 채소, 콩류, 통곡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입니다. 초가공식품이란 원재료보다 식품 첨가물과 가공 과정이 복합적으로 개입된 제품을 가리키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이의 과다 섭취를 만성질환 위험 요인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적색육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적색육이 단백질, 철분, 비타민 B군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식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병든 고기나 기한이 지난 제품의 섭취, 그리고 가공육과 초가공 형태로 반복적으로 먹는 방식입니다. 상태 좋은 신선 적색육을 적당량, 다른 식품과 함께 먹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탄수화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만 조금 줄이고 과한 양만 피하면서 채소, 단백질과 함께 먹는 구성이라면 굳이 탄수화물을 악으로 몰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어떤 완벽한 신약이나 영양제가 나오더라도 이 생활 습관의 원칙은 바뀌지 않습니다. 위고비 같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GLP-1 Receptor Agonist)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란 식욕 억제 호르몬과 유사하게 작용해 체중 감소를 돕는 약물 계열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약도 생활 습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 임상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약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은 이미 생활 습관을 다듬어온 사람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요약: 최신 연구가 가리키는 방향은 채소·콩류·통곡물 중심이며, 적색육은 상태와 맥락에 따라 충분히 포함 가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적색육 먹으면 진짜 암 걸리나요?

A. 역학 연구에서 가공육과 적색육의 과다 섭취가 대장암 위험을 높인다는 결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신선한 적색육을 적당량, 채소와 함께 섭취하는 맥락과 매일 가공육을 과하게 먹는 맥락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 경험상 "적색육을 끊어야 하나"보다 "어떤 상태의 고기를 얼마나, 무엇과 함께 먹는가"를 따지는 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Q. 식단 조절은 의지 문제 아닌가요?

A. 의지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의지에는 임계점이 있어서,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한 뒤 그 의지를 온전히 발휘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수없이 그 패턴을 반복해봤습니다. 그래서 의지를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리 환경을 세팅해두는 것이었습니다. 선택지 자체를 바꿔두면 의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Q. 가성비 좋은 건강 식품이 뭐가 있나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냉동 블루베리·냉동 브로콜리·현미 즉석밥 이 세 가지가 가장 가성비가 높았습니다. 조리가 거의 필요 없고, 상시 비축해두면 피곤한 날에도 별 고민 없이 꺼내 먹을 수 있습니다. 바나나도 가격 대비 영양 밀도가 높아서 함께 두면 좋습니다.

 

Q. 영양제로 음식을 대체할 수 있나요?

A. 실험 결과를 보면 베타카로틴을 영양제로 섭취한 집단에서 오히려 폐암이 증가했던 반면,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채소를 많이 먹은 집단에서는 폐암이 감소했습니다. 이걸 식품 매트릭스(Food Matrix) 효과라고 하는데, 식품 안에 있는 수분·섬유·미네랄이 함께 작용할 때 비로소 온전한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양제는 보조수단이지 음식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보도 넘치고 환경도 내 편이 아닌 상황에서 의지 하나만으로 식단을 유지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승산이 낮은 싸움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 싸움을 반복하면서 번번이 같은 지점에서 무너졌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향은 냉동 채소와 즉석밥을 상시 비축하고, 에너지 드링크 대신 블랙커피를 눈앞에 두고, 회식이 잦은 주에는 나머지 끼니를 조금 더 단단하게 챙기는 식으로 환경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입니다. 음식의 선악을 따지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지금 내 접시의 절반을 채소로 채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쪽에 힘을 쓰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교과서 같은 정답이 결국 정답이더라는 걸, 멀리 돌아서야 알게 됐습니다.

참고: https://youtu.be/_J_Pf7UdWjE?si=6yU-fZIXfqKg-A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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