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평생 피워도 90까지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담배가 안전하다는 뜻일까요? 유전이 다라는 주장이 댓글에 도배되는 걸 볼 때마다 저는 이 질문을 먼저 떠올립니다. 직접 겪어보니, 유전이라는 변수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 동시에 훨씬 덜 결정적이었습니다.

유전은 운명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저는 유전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도 걷는 콘벨트처럼 넓은 평야 위에 서 있고, 어떤 사람은 눈을 뜨고도 외줄 위에 서 있습니다. 유전은 평야냐 외줄이냐를 결정하는 거고, 거기서 얼마나 조심하느냐는 결국 본인 몫이라는 거죠.
쌍둥이 연구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분석에서는 수명의 유전력이 약 20~25%로 보고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외인성 사망 요인, 그러니까 사고사나 타살 같은 변수를 제거하고 내재적 사망만을 따로 분석한 연구에서는 유전력이 50~55%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여기서 유전력이란 특정 형질의 개인차 중 유전자가 설명하는 비율을 뜻합니다. 수치가 올라갔다고 해서 "역시 유전이 전부네"가 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 데이터를 보고 '유전적 위험 자체를 생활습관만으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더 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증거는 생활습관 쪽으로도 묵직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유전자가 동일한 남한과 북한의 평균 수명 차이는 12년입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인은 위암이 줄고 대장암과 유방암이 늘었는데, 이민 1세대는 여전히 일본 패턴을 보이다가 2~3세대로 가면서 미국 패턴으로 바뀝니다. 유전자는 그대로인데 식단과 환경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단 8주간 한 명은 일반식, 한 명은 비건식을 했을 때 비건식 쪽의 생체 나이가 4년 줄었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후성유전학이 바꾸는 유전자의 작동 방식
솔직히 처음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그냥 유식한 표현이겠거니 했습니다. 직접 공부해보니 이게 생각보다 훨씬 실용적인 개념이었습니다. 후성유전학이란 DNA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 않고도 유전자의 발현을 켜고 끄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쉽게 말해, 악보는 타고나지만 그걸 연주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지휘자가 바로 생활습관이라는 겁니다.
그 지휘봉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메틸기(Methyl group)입니다. 메틸기란 유전자에 달라붙어 해당 유전자를 침묵시키는 화학적 표지를 말합니다. 젊을 때는 암 억제 유전자가 활발히 발현되고 암 유발 유전자에는 메틸기가 붙어 잠겨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이게 반전됩니다. 암 억제 유전자에 메틸기가 붙어 작동을 멈추고(과메틸화), 암 유발 유전자에서는 메틸기가 떨어집니다(저메틸화). 이 과정이 나이 들수록 암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메틸화 패턴은 음식으로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메틸기를 만드는 핵심 경로에는 SAM이라는 물질이 관여하는데, 이 SAM이 고갈되면 호모시스테인이라는 강력한 염증 물질로 변환됩니다. 호모시스테인 수치가 높으면 심혈관 질환 위험이 올라간다는 건 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PubMed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메틸화 경로를 잘 유지하는 것이 유전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생체 나이를 줄이는 메틸화 식품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건강식을 챙긴다고 하면 대부분 칼로리 계산이나 단백질 비율을 먼저 떠올리는데, 메틸화 관점으로 식단을 보기 시작하니 오히려 더 실용적인 선택 기준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메틸화에 관여하는 식품들을 8주간 집중적으로 섭취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의 생체 나이가 평균 3.2년 줄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생체 나이란 실제 나이와 다르게, 메틸화 패턴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신체의 노화 정도를 말합니다. 43세인데 생체 나이가 40세로 나왔다면, 세포 수준에서 3년 젊게 기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실험에서 쓰인 식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비트: SAM 재활용 우회로를 활성화해 호모시스테인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 표고버섯: 메틸화 효율에 독립적인 경로로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 브로콜리(십자화과 채소): 설포라판이라는 성분이 MTHFR 유전자 활성을 보조하고 엽산도 함께 공급합니다.
- 시금치·아스파라거스: 활성형 엽산을 직접 공급해 메틸화 경로 전반을 지원합니다.
- 렌틸콩·아보카도: 천연 메틸기 공급원으로 꼽히며, 식이섬유와 건강한 지방도 함께 섭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MTHFR 유전자란 비활성 엽산을 활성 엽산으로 전환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말합니다. 한국인의 약 65%가 이 유전자의 활성이 저하된 변이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곧 활성형 엽산을 무조건 보충제로 먹어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효율이 30% 낮아질 뿐 기능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메틸화 경로에는 여러 우회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한 바로는 굳이 MTHFR 유전자 검사를 받기보다는 혈중 호모시스테인 수치를 직접 확인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출처: 미국심장협회(AHA) 등에서도 심혈관 위험 인자로 호모시스테인을 관리 항목으로 다룹니다).
혈당 관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연속혈당측정기(CGM)란 피부 아래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혈당 변화를 추적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달아봤더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아침 혈당 스파이크를 걱정하는데, 저는 점심 혈당이 유독 크게 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점심 전후로 짧은 걷기를 넣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건 연속혈당측정기를 쓰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정보입니다.
사회적 관계도 수명 데이터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장수 관련 책이니까 식단이나 운동 이야기만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사회적 관계가 다섯 가지 핵심 축 중 하나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사람과 어울리면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수명 데이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친밀한 사회적 유대 관계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생존율이 50% 높다는 연구가 있고,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동등한 해로움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병 발생률이 절반 수준으로 낮다는 데이터도 함께 제시됩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의 총사망 원인 위험이 24% 낮아진다는 결과, 화초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지고 혈압 조절이 개선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만성적으로 높은 상태가 유지되면 면역 저하와 심혈관 위험으로 이어집니다. 화초 하나를 키우는 행위가 이 코르티솔을 실질적으로 낮춘다는 건, 제가 처음 접했을 때 반신반의했지만 메커니즘을 따라가 보니 납득이 됐습니다.
감사하는 습관도 장수와 연결됩니다. 일본 성인 17,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매일 웃는 사람은 총사망 위험이 낮았습니다. 추상적으로 "감사하게 살자"가 아니라 — 감사 일기를 쓰거나, 짧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당연하게 쓰고 있는 물건들이 없다면 어떨지 잠깐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제 경우엔 이게 생각보다 꽤 어려웠습니다. 억지로 쓰려고 하면 뻔한 말이 나오는데,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쓰기 시작하니 달라지더라고요.
자주 묻는 질문
Q. 유전이 나쁘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민 세대 연구나 일란성 쌍둥이 실험을 보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식단과 환경에 따라 수명과 질병 패턴이 달라집니다. 유전이 나쁘다는 건 외줄 위에 서 있다는 뜻이지, 반드시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의할 이유가 더 많다는 쪽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습니다.
Q. MTHFR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할까요?
A. 제가 공부한 바로는 대부분의 경우 MTHFR 유전자 검사보다 혈중 호모시스테인 수치를 직접 확인하는 게 더 실용적입니다. 한국인의 65%가 이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을 만큼 흔한 변이이고, 효율이 조금 낮아질 뿐 기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우회 경로도 여러 개 있어서, 어떤 학회도 일반인에게 이 유전자 검사를 권고하지 않습니다.
Q. 연속혈당측정기, 당뇨 없는 사람도 써봐야 하나요?
A. 저는 비당뇨인인데도 직접 달아봤고, 그 결과 점심 혈당이 아침보다 크게 튄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평생 몰랐을 정보를 2주 만에 알게 됐습니다. 40세가 넘었다면 일생에 한 번 정도는 2주 단위로 달아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화된 혈당 패턴을 파악하면 운동 타이밍이나 식사 순서를 조정하는 데 실질적인 기준이 생깁니다.
Q. 항노화 영양제 중에 정말 효과 있는 게 있나요?
A. 제가 확인한 바로는 아직 인간 임상에서 수명 연장이 입증된 영양제는 없습니다. NMN, 스페르미딘, 글루타치온 등이 중간 근거를 갖춘 편으로 거론되지만, 상급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비타민 D는 한국 환경에서 음식으로 충분량을 채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보충제로 챙기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결론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저도 편향제 이야기나 셀틱 소금 같은 내용에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후성유전학과 메틸화 메커니즘, 사회적 관계의 수명 데이터까지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책이 설득력 있는 건 "이렇게 살아라"는 선언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메커니즘을 함께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유전은 평야냐 외줄이냐를 정해주지만, 거기서 얼마나 조심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여전히 생활습관의 몫입니다. 당장 거창한 걸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브로콜리 한 접시, 점심 후 짧은 걷기, 오늘 고마웠던 일 하나를 적는 것부터 시작해도 생체 나이는 실제로 달라집니다. 제가 그 과정을 직접 실험해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