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러 가는 게 즐거워야 하는데, 어떤 날은 그 사람 얼굴이 떠올라 발걸음이 무거워진 적이 있습니다. 저도 동호회에서 남 험담을 즐기는 사람 때문에 꽤 오래 소모됐거든요. 인간관계가 힘든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악연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동호회에서 유독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분이 있었는데, 다른 회원들과는 꽤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이, '아, 저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나하고 안 맞는 거구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원증회고란 싫어하는 대상과 반복적으로 마주쳐야 하는 고통을 뜻하는 말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여덟 가지 고통 중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특별히 못나서 저런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도 이 현상을 '대인 갈등(interpersonal conflict)'이라는 용어로 다루는데, 대인 갈등이란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행동 방식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긴장 상태를 말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에 따르면, 직장이나 집단 내 인간관계 갈등은 개인의 심리적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스트레스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제가 오래 고민했던 건 험담하는 사람 옆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였습니다. 동조하면 저도 가담한 게 되고, 그렇다고 무조건 듣고만 있으면 암묵적인 동의가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결국 한 번은 자연스럽게 반박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저한테 험담을 가져오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받아주지 않으면 상대도 서서히 조정하더라고요.
불교의 팔고(八苦), 즉 인간이 경험하는 여덟 가지 고통 중에는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도 포함됩니다. 팔고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에 더해 관계와 욕구에서 비롯되는 네 가지 고통을 합친 개념으로, 어떤 사람도 이 여덟 가지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가 겪는 불편함이 제 잘못이 아니라는 게 조금 더 납득이 됐습니다.
- 악연(惡緣)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맞지 않아 불편함을 주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싫어하는 존재와 계속 마주해야 하는 고통으로,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 험담에는 동조도, 침묵도 아닌 '가벼운 반박'이 관계를 조용히 정리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팔고(八苦)의 개념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특정 개인의 결함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화합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두는 기술'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이좋게 지내려면 생각이 비슷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믿음이 오히려 관계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바뀌지 않으면 배척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거든요. 돌이켜보면 동호회에서도 그런 패턴이 있었습니다.
화합의 본질은 의견 통일이 아닙니다. 불교 공동체에서 쓰이는 의결 방식 중 만장일치(滿場一致) 원칙이 있는데, 여기서 만장일치란 모든 구성원이 같은 의견을 가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저 사람의 판단을 한 번 따라보겠다'는 의지가 모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산에 굵은 소나무만 있는 게 산이 아닌 것처럼, 잔나무도 가시나무도 벌레도 다 있어야 산입니다. 벌레는 징그럽다고, 이끼는 미끄럽다고 다 빼버리면 그건 산이 아닌 거죠. 제가 직접 써봤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를 정리하려 할수록 오히려 주변이 좁아지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만 남았는데 왜인지 더 외로워지는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는 긍정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밝힙니다. 단, 이 관계망의 질이 양보다 중요하며, 관계의 다양성 자체가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기여한다고 설명합니다. 심리적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금세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정신적 유연성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아무리 공부를 해도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거리를 두는 게 지혜라고 말합니다. 참고 맞으면서도 수행이 깊은 척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는 거죠. 다만 거리를 두는 것과 배척은 다릅니다. 배척은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끊어내는 것이고, 거리두기는 나를 보호하면서도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동호회에서 결국 선택한 방법도 이쪽이었습니다. 그만두지도, 절교하지도 않고 조금 멀리 앉기 시작했더니 훨씬 숨통이 트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동호회에서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냥 참아야 하나요?
A. 무작정 참는 건 장기적으로 더 큰 소모를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참는 게 성숙한 태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참는 것과 거리두기는 전혀 다른 결과를 냅니다. 불편한 사람과는 물리적 거리를 조금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부담이 꽤 줄어들 수 있습니다.
Q. 험담하는 사람 옆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A. 동조도, 무반응도 결국 허용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가볍게 반박하거나 화제를 전환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이었습니다.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느끼면 서서히 가져오는 빈도를 줄이더라고요.
Q.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수 있나요?
A. 억지로 좋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다만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판단을 잠깐 내려놓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맞지 않을 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시각 자체가 관계의 피로를 조금 덜어줍니다.
Q. 거리두기를 하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요?
A. 거리두기는 배척이 아닙니다. 상대를 부정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조용히 자리를 바꾸거나, 대화 빈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거리를 둘 수 있고, 이건 지혜로운 행동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결론
인간관계가 힘든 건 내가 못난 게 아닙니다. 팔고(八苦)라는 개념이 말해주듯,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마주하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중요한 건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저도 동호회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결국 두 가지였습니다. 험담에는 가벼운 반박으로 선을 그을 것, 그리고 도저히 안 되는 사람에게는 미련 없이 거리를 둘 것. 그 두 가지만으로도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당장 모든 관계를 정리하려 하기보다, 조금만 자리를 옮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