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15년 전 신혼여행으로 파리와 로마를 다녀오면서 샤넬백을 한 개도 사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하나 사오라고 했는데도요. 그 후 샤넬 가격이 두 배, 세 배로 치솟는 걸 보면서 '그때 살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놓친 건 가방이 아니라 그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방식이 무너지는 걸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리셀 시장은 어떻게 가방을 자산으로 만들었을까
그때 파리 샹젤리제 매장 앞을 지나치면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명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게 새벽부터 텐트 치고 번호표 사고파는 '오픈런'의 시작이었다는 건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리셀 시장(resell market)이란, 정품을 정가에 구입한 뒤 웃돈을 얹어 되파는 2차 거래 시장을 말합니다. 주식으로 치면 공모주를 받아 상장 첫날 바로 파는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2019년 700만 원대였던 샤넬 클래식 미디엄은 불과 몇 년 사이 2배 반 이상으로 뛰었고, 매장에서 1,000만 원에 산 가방이 그날 오후 중고로 1,300만 원에 팔렸습니다. 이 구조가 반복되자 전업 리셀러까지 등장했습니다. 알바를 써서 매장 앞에 줄을 세우고 풀리는 물량을 쓸어담아 곧바로 되파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시장이 굴러간 데는 명확한 톱니바퀴 구조가 있었습니다. 브랜드가 가격을 올리면 이미 가방을 보유한 사람은 이익이 생기고, 아직 못 산 사람은 조급해져서 수요가 늘고, 수요가 늘면 중고가도 오르고, 중고가가 오르면 브랜드는 또 가격을 올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순환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핵심 연료는 딱 하나였습니다. '나 다음에도 더 비싸게 받아줄 사람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번개장터 곽호영 팀장은 "매년 가격이 10% 안팎으로 오르니 제품 가치가 잘 떨어지지 않고 방어가 된다"고 말했습니다(출처: 번개장터). 이처럼 중고 명품의 가격 방어력이 알려지면서 '샤테크'라는 말까지 생겼고, 가방은 소비재가 아닌 재테크 상품 취급을 받게 됐습니다.
- 2019년 샤넬 클래식 미디엄 가격: 약 700만 원대
- 2026년 7월 기준 동일 제품 가격: 약 1,880만 원
- 당일 매장 구매 후 중고 즉시 판매 시 차익: 수백만 원
- 샤넬 클래식 플랩백 중고가: 신품가의 90% 이상 유지
가격 저항선을 넘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제가 그때 파리에서 가방을 사지 않은 이유는 솔직히 단순했습니다. 700만 원이라는 가격이 제 머릿속 어딘가에 그어진 선을 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가격 저항선이었던 셈입니다.
가격 저항선(price resistance level)이란, 소비자가 심리적으로 '이 이상은 낼 수 없다'고 느끼는 임계점을 말합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분석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인데, 명품 시장에도 정확히 같은 원리가 작동했습니다. 1,000만 원까지는 그럭저럭 납득이 됐던 사람들도 1,880만 원이라는 숫자 앞에서 처음으로 멈칫했습니다. 웬만한 중고차 한 대 가격이니까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이 계산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가격이 두 배 반 넘게 뛰었으면 가죽이든 바느질이든 그만큼 좋아졌어야 맞는데, 가방은 예전 그 가방 그대로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의 실제 제조 원가가 소비자가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배신감이 더해졌습니다. 제 경험상, 어떤 물건이든 '원가 대비 마진'이 알려지는 순간 구매 심리가 확 꺾이더라고요.
수요가 꺾이자 반대편에서 공급이 쏟아졌습니다. 빚까지 내서 가방을 사뒀던 사람들이 금리 인상으로 버티기 어려워지자 손해를 감수하고 현금화에 나섰습니다. 투자 수요(investment demand)란 실제 사용이 아닌 가격 상승 기대로 물건을 매수하는 수요를 말하는데, 이 투자 수요가 빠지는 순간 시장은 순식간에 역전됩니다. 전가 대비 반값에 내놔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까지 온 건 그 결과였습니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진짜 수혜자는 누구였나
리셀러들이 물리고, 플랫폼이 무너지는 동안 딱 한 곳만 역대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솔직히 좀 허탈했습니다. 샤넬 코리아는 지난해 한국에서만 매출 2조 원을 처음으로 돌파했습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까지 세 브랜드를 합치면 한 해 4조 원이 훌쩍 넘는 돈을 한국 시장에서 거둬들였고, 셋 다 나란히 역대급 실적이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더 놀라운 건, 리셀 판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샤넬은 2026년 들어 벌써 다섯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수요가 줄면 가격을 내리는데, 정반대로 간 겁니다. 이탈한 사람은 이탈하게 두고 남은 손님에게 더 받는 전략이었습니다.
세금 문제도 이 판의 종말을 앞당겼습니다. 반복적인 명품 되팔기는 국세청 기준으로 취미가 아닌 사업 소득으로 분류됩니다. 실제로 6개월간 5억 원어치를 거래한 한 40대 직장인은 매입 영수증을 챙겨두지 않아 판매 금액 전체에 세금이 붙었고, 가산세까지 더해져 7,000만 원의 고지서를 받았다는 사례가 보도됐습니다. 부업으로 용돈 벌려다 몇 년치 월급을 토해낸 꼴이었습니다. 국세청이 크림, 당근 같은 플랫폼의 거래 내역을 전수 조회하기 시작하면서 전업 리셀러들은 하나둘 시장을 떠났습니다.
결국 이 판에서 진짜 이익을 가져간 건 본사였습니다. 새벽에 텐트 치고 줄을 서준 사람들 덕분에 이름값이 올랐고, 그 이름값을 앞세워 가격을 또 올렸으며, 올라간 가격은 줄을 서준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벌어들인 이익 상당액은 배당 형태로 프랑스 본사로 넘어갔습니다. 한 해에만 2,000억 원 가까운 규모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샤넬백 중고로 팔면 지금도 이익이 남나요?
A. 2026년 현재 상황으로 보면 쉽지 않습니다. 전가 대비 수백만 원 싸게 내놔도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웃돈이 붙던 시기는 사실상 끝났고, 어느 모델을 언제 샀느냐에 따라 손실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명품 되팔기 하면 세금 내야 하나요?
A. 반복적이고 계획적인 되팔기는 국세청이 사업 소득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매입 증빙을 갖추지 않으면 판매 금액 전체에 세금이 부과되고 가산세까지 더해질 수 있습니다. 국세청은 이미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으므로, 단순한 용돈벌이라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에르메스는 왜 샤넬과 달리 리셀 시장 붕괴 영향을 덜 받았나요?
A. 에르메스는 실적을 쌓은 고객에게만 인기 가방 구매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공급량 자체를 엄격히 통제합니다. 유통 물량이 적으니 중고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기 어렵고, 희소성이 유지됩니다. 샤넬은 가격은 높이면서도 물량을 많이 풀었는데, 그 많은 물량이 나중에 중고 시장 공급 과잉으로 돌아왔습니다.
Q. 명품 리셀 대신 지금 사람들은 어디에 투자하나요?
A. 리셀 시장에서 빠진 자금 상당수가 금이나 배당주로 이동했습니다. 한때 운동화 리셀 1위였던 플랫폼 크림조차 금·은 거래를 새로 시작한 것이 그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명품 살 돈이면 차라리 금을 산다'는 말이 실제 자금 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결론
15년 전 파리에서 샤넬백을 사지 않은 걸 두고 한동안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장 전체를 들여다보고 나니, 제가 놓친 건 수익 기회가 아니라 하나의 신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르기만 할 것 같던 그 신화가 작동한 이유도, 멈춰선 이유도 결국 같은 곳에서 나왔습니다. 다음 사람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거품이 빠진 지금 시장은 오히려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투자 수요가 빠지고 진짜 그 가방이 좋아서 쓰려는 사람들만 남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은, 어쩌면 더 건강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지금 주변에서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들리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이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