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는 게임이 있다면, 그 게임의 규칙을 혼자 깨버린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올해 3월, 로이터가 수년짜리 탐사보도를 통해 뱅크시의 정체를 1973년생 브리스톨 출신 로빈 거닝엄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제가 든 감정은 "그래서?"가 아니라 "왜?"였습니다. 폭로 저널리즘과 공익 사이에서 뱅크시라는 존재가 지금껏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익명성이 생존 전략이었던 30년
뱅크시를 처음 접한 건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의 부재였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생년조차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없는 작가가 100억 원짜리 그림을 파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꽤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뱅크시의 익명성은 처음부터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그라피티(graffiti)는 재물손괴죄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그라피티란 타인의 소유물에 허가 없이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는 행위로, 영국에서는 법정 최고형이 징역 10년에 달합니다. 실제로 2011년, 낙서 예술가 '톡스'는 지하철과 열차에 자신의 서명을 반복 도배한 혐의로 일곱 건의 재물손괴죄를 적용받아 징역 27개월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피해액은 당시 환율로 약 3억 5천만 원 규모였습니다.
이 재판에서 검사가 법정 발언으로 "그는 뱅크시가 아니다. 예술적 기량이 없다"고 말했다는 대목이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판사도 선고하면서 "당신이 하는 일에 예술적인 것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뱅크시가 하는 일이나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 다르냐며 항변했던 톡스의 주장은 법원에서 통하지 않았습니다. 법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세상은 이미 뱅크시를 예외로 대접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무기는 스텐실(stencil) 기법이었습니다. 스텐실이란 그림 모양대로 구멍을 뚫은 판을 벽에 대고 스프레이를 분사하면, 구멍을 통과한 물감이 도장 찍히듯 수십 초 안에 이미지를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10대 시절 경찰에게 쫓기다 트럭 아래 숨었을 때 차대에 박힌 번호판의 스텐실을 보고 이 기법을 떠올렸다고 전해집니다. 빠르게 그리고 사라지는 것, 그것이 30년 생존의 핵심이었습니다.
- 영국 재물손괴죄 법정 최고형: 징역 10년
- 스텐실 기법: 판을 대고 스프레이를 분사해 수십 초 만에 이미지 완성
- 진품 인증 독점 기관: 페스트 컨트롤(Pest Control) — '해충 방제'라는 뜻
- SNS 직접 인증: 작업 후 본인 계정에 올려야 비로소 공식 작품으로 인정
풍자미술이 자본주의를 타고 100억이 되는 방식
뱅크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2018년,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풍선을 든 소녀'가 낙찰되는 순간, 액자 안에 숨겨둔 파쇄기가 작동해 그림의 절반이 갈려 내려갔습니다. 원격으로 버튼을 누른 건 뱅크시 본인이었습니다. 이후 이 작품의 제목은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Love is in the Bin)'로 바뀌었고, 3년 만에 가격은 약 290억 원으로 뛰었습니다. 파괴 행위 자체가 새로운 작품이 된 셈입니다.
뱅크시가 나중에 밝힌 바로는 원래 전부 파쇄하려 했는데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아 절반만 잘렸다고 합니다. 덕분에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유지됐고, 어쩌다 보니 훨씬 더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이 사람 진짜 선수구나 싶었습니다. 의도든 우연이든 결과적으로 완벽했으니까요.
이 지점에서 뒤샹의 '샘(Fountain)'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뒤샹은 시중에서 파는 남자 소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하고, 자신이 직접 "알 뮤트라는 작가의 소변기 작품은 화장실에 나타난 부처님처럼 고귀하다"는 평론을 썼습니다. 미술비평이라는 업계 관행 자체가 헛소리임을 공격하기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퍼포먼스가 유명해지자, 뒤샹은 어느 순간 자신이 욕하던 그 시스템이 만들어낸 아이콘이 돼버렸습니다. 심지어 같은 변기를 컬렉터에게 팔기도 했습니다.
뱅크시도 이 딜레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10년작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홈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LA 거리를 누비던 배나온 아저씨 '미스터 브레인워시'를 현대미술 작가처럼 포장해 초대형 박람회를 열고, 그 전 과정을 영화로 찍습니다. 여기서 컨셉트 아트(concept art), 즉 아이디어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개념미술의 허점을 꿰뚫습니다. 미술실력 없는 사람이 컨셉만 잡고, 실제 제작은 전부 외주 작가가 해도 '작가'로 불릴 수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재현해버린 것입니다. 제목의 '선물가게'는 미술관이 작품 판매보다 머천다이즈로 더 많이 수익을 올리는 현실을 직접 겨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뱅크시 본인은 어떻습니까. 진품 인증을 독점하는 페스트 컨트롤(출처: Pest Control 공식 사이트)을 운영하고, 판화 유통 법인 픽처스 온 월즈를 포함해 최소 일곱 개의 법인을 통해 시장을 움직입니다. 페스트 컨트롤의 공시 자산은 2009년 약 4억 원 수준에서 2024년 약 100억 원대로 15년 만에 20배 이상 불었습니다. 체제를 욕하면서도 그 체제 안에서 가장 영리하게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걸 위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쿠팡 알바를 딱 한 번 해봤을 때 생각난 장면이 있습니다. 전두환 시절 국민체조를 거의 반강제로 하라고 틀어줬는데, 체제에 저항적으로 보이던 청년들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진지하게 체조를 따라 하더군요. 저는 멀뚱히 있다가 딸뻘 주임한테 눈치를 받았고, 결국 시늉이라도 하게 됐습니다. 뱅크시의 딜레마가 딱 그 순간과 겹쳐 보였습니다. 가장 체제 비판적인 사람도 결국 그 체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비판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어쩌면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정체 공개 이후, 뱅크시는 여전히 뱅크시인가
로이터는 2025년 3월 13일, 수년에 걸친 탐사보도를 통해 네 가지 단서를 제시했습니다. 지리 프로파일링(geographic profiling), 2004년 자메이카에서 찍힌 사진 한 장, 우크라이나 국경 통과 기록, 그리고 법인 공시 자료의 연결고리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지리 프로파일링이란 범죄 수사에서 범행 장소들을 지도에 찍어 범인의 거주지나 활동 근거지를 통계적으로 좁혀가는 기법입니다. 2016년 런던 퀸대학교 연구진이 뱅크시 벽화 140점의 위치를 이 모델에 입력했더니, 추정 베이스 캠프가 로빈 거닝엄의 런던 주소, 브리스톨 고향집, 단골 술집 세 곳과 정확하게 겹쳤습니다(출처: Reuters).
뱅크시 측 공식 입장은 침묵이었습니다. 페스트 컨트롤이 발표한 성명은 단 한 줄, "뱅크시는 이 사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인정도 부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이 침묵이 오히려 가장 뱅크시다운 대응이라고 느꼈습니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한, 로이터가 틀릴 1%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리고 그 1%가 살아 있는 한 미스터리는 죽지 않습니다.
보도 6주 뒤인 4월 30일, 런던 버킹엄궁 인근 워털루플레이스에 동상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인데, 바람에 펄럭이는 그 깃발이 남자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습니다. 신원이 공개된 그 시점에, 얼굴이 깃발로 가려진 동상을 들고나온 것입니다. 말보다 훨씬 선명한 답이었습니다.
프로레슬링 용어 중에 케이페이브(kayfab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각본이라는 사실을 관객도 알고 선수도 알지만, 링 안팎에서 그 허구를 함께 유지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석에서 절친이어도 링 위에서 원수 역할을 맡은 선수끼리는 같은 식당에서 밥도 안 먹습니다. 그 규칙을 혼자 깨면 업계에서 매장당합니다. 뱅크시의 익명성은 정확히 이 구조였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게 아니라,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기로 한 30년짜리 게임이었습니다. 로이터는 그 규칙을 깬 겁니다.
그렇다면 작품 가치가 떨어질까요.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08년 영국 신문 메일온선데이가 동일 인물을 일면에 보도했을 때도 시장은 꿈쩍하지 않았고, 이후 작품값은 오히려 계속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때도 "아닐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심리가 작동할 것이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뱅크시 정체가 이번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가요?
A. 아직 공식 확인은 아닙니다. 로이터의 탐사보도가 로빈 거닝엄이라고 지목했지만, 뱅크시 본인은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한, 어디까지나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가설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Q. 뱅크시 그림 진품 인증은 어디서 받나요?
A. 페스트 컨트롤(Pest Control)이라는 기관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뱅크시 작품의 진품 인증을 담당합니다. 뱅크시 측이 직접 운영하는 기관으로, 이 인증 없이는 어떤 제3자도 진품 여부를 공식적으로 판정할 수 없습니다. 실제 경매에서도 이 인증서 유무가 낙찰가를 크게 좌우합니다.
Q. 뱅크시 작품이 건물 벽에 있으면 소유권은 누구한테 있나요?
A. 법적으로는 그 벽이 있는 건물 소유주에게 소유권이 있습니다. 실제로 벽화가 그려진 건물을 매각할 때 벽 자체를 통째로 떼어내 판 사례도 있습니다. 뱅크시가 스포츠 클럽 같은 작은 단체를 위해 일부러 벽화를 그려주고 그걸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도록 도운 사례도 있습니다.
Q. 뱅크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10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해외 스트리밍 플랫폼 일부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미술계의 자본화와 개념미술의 허점을 코미디처럼 풀어내는 작품인데, 저는 이 영화가 뱅크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나면 미술관 선물가게가 다르게 보입니다.
Q. 뱅크시 서울 전시는 어디서 하나요?
A. 2025년 여름 더현대서울 인근에서 'Still Here' 전시가 개막했습니다. 11월 3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로, 판화 작업과 대형 벽화 재현, 미디어아트 등을 통해 뱅크시의 주요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뱅크시가 어떤 전시도 공식 승인하지 않는다는 점은 변함없지만, 전시 작품은 페스트 컨트롤 인증을 받은 진품들로 구성됩니다.
결론
뱅크시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 뱅크시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로이터의 보도 이후 저는 오히려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뱅크시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특정 인물의 신원이 아니라, 30년 동안 도시의 벽을 통해 축적된 태도에서 나옵니다. 그 태도는 이름표 없이도 작동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작업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장 영리하게 움직인다는 모순은 사실 뱅크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 역시 쿠팡 물류창고에서 국민체조 앞에 잠시 멈칫했던 사람이니까요. 중요한 건 멈칫하면서도 비판을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비판을 돈도 되고 의미도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뱅크시 서울 전시를 앞두고, 작품보다 그 태도를 먼저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