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분이 있습니다. 52세인데 고등학생들이 달리기 중에 번호를 물어볼 정도입니다. 그 비결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억만장자들이 수십조를 쏟아붓는 항노화 연구가 갑자기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게 됐습니다. 노화를 단순히 늦추는 것과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 이 둘은 생각보다 훨씬 다른 문제입니다.

부자들이 노화에 수십조를 거는 배경
제프 베조스가 알토스랩스(Altos Labs)라는 바이오스타트업에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조 9천억 원을 쏟아부었을 때, 처음에는 그냥 돈 많은 사람의 특이한 취미쯤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과학 자문단 수장이 야마나카 신야라는 걸 알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야마나카 신야는 다 자란 세포를 갓 태어난 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발견해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인물입니다.
한편 브라이언 존슨이라는 억만장자는 매년 26억 원을 써가며 자기 몸을 말 그대로 실험실로 만들었습니다. 하루 알약 100알 넘게, 철저한 채식 식단, 오전 11시 이후 단식.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과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의 그분, 44세에 의대에 들어가 지금 52세에도 심박수 200까지 올리는 인터벌 훈련을 매일 하고, 피세틴·NMN·오메가3 등을 꾸준히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극단의 차이는 있지만 방향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냉정한 사업가들이 한 가지 주제에 동시에 돈을 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노화를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 고칠 수 있는 오류'로 규정합니다. 그 계산 빠른 투자자들이 이 논리를 보고 지갑을 열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 알토스랩스 초기 투자액: 30억 달러(약 3조 9천억 원) — 바이오스타트업 역대 최대 규모
- 구글 칼리코(Calico): 2013년 설립, 노화 자체를 연구 목표로 설정
- 미국 소득 상위 1% 남성은 최하위 남성보다 평균 14.6년을 더 삽니다 (출처: JAMA, 미국의사협회지)
후성유전체와 시르투인, 노화의 진짜 정체
노화를 이해하려면 후성유전체(Epigenome)라는 개념을 먼저 짚어야 합니다. 후성유전체란 DNA 염기서열 자체는 바꾸지 않으면서,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끌지를 결정하는 조절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 2만 개 건반이 달린 피아노(DNA) 앞에 앉은 연주자가 바로 후성유전체입니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가 건반을 잘못 누르기 시작하면 음악이 망가지는 것처럼, 세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서서히 잊어가는 것이 싱클레어가 정의한 노화의 정체입니다.
복제양 돌리 이후 연구들이 이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늙은 세포의 DNA로 만든 복제 동물이 대부분 정상 수명을 살았다는 것은, 설계도 자체는 멀쩡하다는 증거입니다. 망가진 것은 DNA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연주자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방법은 없을까요. 2020년 싱클레어 연구팀이 시력을 잃은 쥐의 눈세포에 야마나카 인자를 주입했더니 앞을 못 보던 쥐가 다시 세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게재됐습니다 (출처: Nature). 노화를 늦춘 게 아니라 이미 잃어버린 기능을 되돌린 첫 사례였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나옵니다. 시르투인(Sirtuin)입니다. 시르투인이란 손상된 DNA를 수리하고 잘못 켜진 유전자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장수 유전자 단백질로, 우리 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수리공입니다. 문제는 이 수리공이 평소에 거의 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르투인은 몸이 힘들다고 느낄 때, 즉 배고플 때, 추울 때, 격렬하게 움직일 때만 활성화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제 주변 그분이 매일 아침 10km 달리기에 60분 인터벌, 3대 합계 460kg 웨이트를 치면서 52세에도 20대처럼 움직이는 것이 과학적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분의 몸은 수십 년째 시르투인을 매일 깨워온 셈입니다.
건강수명을 늘리는 지금 당장의 선택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2024년 기준 83.7세인데, 건강수명은 65.5세입니다. 건강수명이란 질병 없이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합니다. 두 숫자의 차이가 약 18년입니다. 이 말은 평균적으로 생의 마지막 18년을 어딘가 아프면서 보낸다는 뜻입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이 18년을 줄이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급한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을까요. 첨단 임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시르투인을 깨우는 방법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이를 호르메시스(Hormesis)라고 부릅니다. 호르메시스란 견딜 만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몸에 가했을 때 오히려 방어 능력이 강화되는 현상입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때로 춥거나 덥게 지내는 것이 전부 여기에 해당합니다.
미국 성인 5,800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고강도로 운동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앉아 지내는 사람보다 세포 나이가 10년 젊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같아도 몸속 세포 시계가 다르게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한 가지 불편한 생각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항노화 기술이 진짜로 상용화되는 날, 그 첫 수혜자가 누구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한국만 해도 소득 최상위 계층의 건강수명은 약 75세인데, 최하위 계층은 약 66세입니다. 차이가 8.66년이고, 이 격차는 지난 10년 사이 더 벌어졌습니다. 기술이 오기도 전에 이미 이렇습니다.
싱클레어는 고손자를 살아서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포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꿈을 꾸는 노인이 아래 세대에게 역량과 지혜를 흘려보낼 때, 그 노화는 항노화 기술과 무관하게 이미 아름다운 삶의 과정이 됩니다. 오래 사는 것과 잘 늙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제 경험상 이건 돈보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 간헐적 단식: 16시간 공복으로 시르투인 활성화. 저녁을 일찍 먹고 다음 날 점심까지 공복 유지
- 고강도 인터벌: 최대 심박수의 70~85% 수준. 세포 연료 NAD 합성을 촉진해 장수 유전자를 자극
- 냉온 자극: 주 2~3회 찬물 샤워(합산 11분) 또는 80도 사우나 15~20분으로 열충격 반응 유도
- 동물성 단백질 조절: 과도한 단백질 섭취는 엠토르(mTOR) 스위치를 켜 세포 자가포식을 억제. 자가포식이란 세포가 낡은 부품을 스스로 청소하는 기능
자주 묻는 질문
Q. 노화역전 치료가 실제로 사람한테 적용된 사례가 있나요?
A. 쥐 실험에서는 시력 회복을 포함해 여러 조직의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람 대상 임상은 싱클레어가 공동 창업한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가 미국 FDA 승인을 받아 현재 진행 중입니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동물 실험 단계를 넘어선 것은 사실입니다.
Q. NMN 같은 보충제가 정말 효과가 있나요?
A. NMN(니코틴아마이드 모노뉴클레오타이드)은 시르투인의 연료인 NAD+ 전구체입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노화 지표 개선이 꾸준히 확인됐고, 소규모 사람 임상에서도 NAD+ 수치 상승이 관찰됐습니다. 다만 장기 효과와 최적 용량에 대한 대규모 임상은 아직 진행 중이라, 확정적으로 '효과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Q. 간헐적 단식, 매일 해야 효과가 있나요?
A. 매일 할수록 효과가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매일 16시간 공복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 3~4회부터 시작해 몸이 적응하면 늘려가는 방식이 실제로 지속하기 좋습니다. 핵심은 공복 상태가 시르투인을 자극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지, 완벽한 루틴을 처음부터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Q.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이 다른 건가요?
A. 기대수명은 태어난 시점부터 사망까지의 평균 기간이고, 건강수명은 그중 질병이나 장애 없이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4년 기준 기대수명 83.7세에서 건강수명 65.5세를 빼면 약 18년 차이가 납니다. 이 18년을 줄이는 것이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보다 삶의 질 면에서 훨씬 중요한 과제입니다.
결론
제 주변 그분을 보면서 항노화가 수십조짜리 기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20대 군 제대 이후 30년 가까이 쌓아온 운동 습관, 식단, 수면이 지금의 그 몸을 만들었습니다. 첨단 의학이 따라오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답을 내고 있었던 셈입니다.
노화역전 기술이 오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같은 가격으로 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이유도 없습니다. 후성유전체를 바로잡는 핵심 원리인 호르메시스는 지금 당장, 돈 없이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 그리고 그 역량을 아래 세대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항노화의 진짜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