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부모님이 또래 어르신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기차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습니다. 처음엔 그냥 타고난 체질 덕분이겠거니 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두 분 모두 취미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바빠서 못 만날 지경이거든요. 노년에 취미 하나가 삶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저는 부모님을 통해 몸으로 배웠습니다.

부모님 사례 — 취미가 일상의 리듬이 된 70대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생각이 꽤 위험하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건 정반대였으니까요.
아버지는 70대가 되신 지금도 매주 영어학원에 가십니다. 외국인 선생님과 프리토킹(free talking), 즉 사전에 정해진 주제 없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수업을 받으시는데, 다녀오신 날이면 눈이 반짝입니다. 그림도 틈날 때마다 집에서 그리시는데, 어느새 작품이 너무 쌓여서 저희 집 벽 한 면이 아버지 그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처음엔 그냥 받았는데, 지금은 솔직히 그 그림들이 집 분위기를 완전히 살려놓았다고 느낍니다.
어머니는 음악 쪽으로 에너지를 쏟으십니다. 클래식 기타, 가곡 레슨, 교회 성가대까지 세 가지를 병행하고 계시고, 라인댄스도 정기적으로 나가십니다. 특히 어머니가 강조하시는 건 "공연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음악이든 체육이든 정기 발표회가 있으니까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경험상 느끼기엔 이 "공연"이라는 장치가 단순한 취미를 사회적 연결로 만들어주는 핵심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을 곁에서 보면서 정말 또래 어르신들과 비교가 될 만큼 차이가 납니다. 비슷한 나이인데도 부모님은 매주 나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연습할 게 있습니다. 집에만 계시는 분들이 점점 기력을 잃어가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 아버지: 영어 프리토킹 수업 + 수채화·소묘 등 그림 그리기
- 어머니: 클래식 기타 + 가곡 레슨 + 성가대 + 라인댄스
- 공통점: 정기적인 공연·발표 → 목표와 사회적 연결이 동시에 생김
치매 예방 — 음악과 미술이 뇌에 하는 일
사실 저도 처음엔 취미는 그냥 심심풀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뇌과학 쪽에서 꽤 구체적인 근거가 있었고, 그 내용을 알고 나니 부모님 취미 구성이 굉장히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신경가소성이란, 뇌가 새로운 자극을 받을 때 신경 회로가 스스로 새롭게 연결되고 강화되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나이가 들어도 뇌는 훈련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에 따르면, 지적 자극을 꾸준히 받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유의미하게 느립니다.
그중에서도 악기 연주는 신경가소성 측면에서 특히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악보를 읽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귀로 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클래식 기타가 바로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취미인 줄 알았는데, 치매 예방에 이렇게 직결되는 활동이었을 줄은 몰랐거든요.
미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 즉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해석하고 손으로 재현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전두엽과 두정엽을 모두 자극합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예술 활동이 노년기 정신 건강과 인지 기능 유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라인댄스처럼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신체 활동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유산소 운동이 뇌 혈류를 늘려 해마(hippocampus), 즉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부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다수 있습니다. 음악·미술·운동을 고루 하고 계신 부모님 조합이 우연이 아닌 것 같아 새삼 놀랐습니다.
내면의 자족 — 퇴직 후 무너지지 않는 삶의 구조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19세기 철학자인데, 그가 남긴 말 중에 제가 계속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일 수 있다." 처음엔 그냥 철학적인 수사려니 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꽤 현실적인 말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를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내면의 인격, 재산, 그리고 타인에게 보이는 명예. 그는 이 중 내면의 인격만이 타인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진짜 자산이라고 봤습니다. 직함이나 인맥에 기댄 행복은 그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무너진다는 거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퇴직 후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상황을 주변에서 보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가 평생 실천한 취미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매일 한두 시간씩 홀로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속을 걸으며 몸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소음을 털어내는, 일종의 정신 정화 루틴이었습니다. 여기서 정화 루틴이란, 외부 자극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반복적 습관을 말합니다.
저는 지금 운동 한 가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솔직히 반성이 됐습니다. 부모님처럼 음악 취미를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악보를 보고 손을 움직이는 활동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게 타인 없이도 혼자 몰입할 수 있는 취미라는 점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노년에 은퇴하고 나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려면 늦습니다.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고 시간을 "활용해 내면을 채우는 데 집중"합니다. 내면이 채워진 사람은 타인에게 관계를 구걸하지 않아도 되고, 역설적으로 그런 사람에게 진솔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부모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결국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노년에 취미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있나요?
A. 제 부모님은 60대 중반 이후에 클래식 기타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신경가소성 연구에 따르면 뇌는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자극에 반응해 회로를 재구성합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면 분명히 몸과 뇌가 적응합니다. 늦었다는 생각 자체가 가장 큰 장벽입니다.
Q. 혼자 하는 취미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취미, 어느 쪽이 더 좋은가요?
A. 어느 한쪽에만 극단적으로 쏠리는 삶은 지속 가능한 행복을 주기 어렵습니다. 어머니처럼 성가대·라인댄스처럼 사회적 연결이 있는 취미와, 아버지처럼 혼자 그림을 그리는 몰입형 취미를 함께 가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두 축의 균형이 핵심입니다.
Q. 악기를 배우면 정말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나요?
A. 네, 악보 읽기·손가락 운동·청각 피드백이 동시에 일어나는 악기 연주는 뇌의 여러 영역을 한꺼번에 자극합니다. WHO의 2019년 보고서에서도 예술 활동이 노년기 인지 기능 유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노후 취미로 음악을 꼭 하나 추가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취미 없이 노년을 보내면 어떻게 되나요?
A.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과 기력 저하가 빠르게 찾아옵니다. 쇼펜하우어의 표현처럼 내면이 비어 있으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의미 없는 자극에 의존하게 됩니다. 취미 없이 퇴직한 분들이 급격히 무기력해지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취미는 심심풀이가 아니라 삶의 리듬 자체를 만드는 구조입니다.
결론
부모님 덕분에 저는 행복한 노년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70대에도 매주 나갈 곳이 있고, 손이 바쁘고, 새로 배우는 게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집니다. 제가 지금 운동 하나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글을 쓰면서 더 선명하게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노후를 위한 문화생활은 사치가 아닙니다. 신경가소성을 유지하고, 해마를 보호하고, 내면의 자족을 만들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저는 앞으로 운동에 더해 음악 관련 취미를 하나 만들 계획입니다. 지금 당장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 한 권, 악기 한 음, 그림 한 선이 쌓여서 결국 그 사람의 노년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