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 고치는 사람, 손재주가 좋아서일까요? 저희 아버지는 평생 그렇게 사셨는데, 직접 겪어보니 손재주는 그냥 덤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자기효능감

공구함이 있는 집에서 자란다는 것

어릴 때 저희 아버지는 집에서 '맥가이버'로 통했습니다. 세탁기가 멈추면 뒤판을 열고, 자동차 보닛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셨습니다. 저희 형제에게 그건 너무 당연한 풍경이라서, 고장이 나면 기사를 부른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고장나면 아버지가 고치는 게 그냥 디폴트값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말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이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믿음으로, 막연한 낙관과는 다릅니다. 반두라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감각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원천은 '직접 해낸 경험(Mastery Experience)'입니다. 즉, 누군가 잘한다고 칭찬해 줘서 생기는 게 아니라 손으로 직접 해봐야 쌓인다는 것입니다(출처: Simply Psychology – Self-Efficacy).

저희 아버지가 보닛을 열 때 저는 옆에서 그걸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남았습니다. 고장은 두려운 사건이 아니라 손댈 수 있는 퍼즐이라는 감각. 아버지는 말로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 공구함이 열리는 장면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었습니다.

  • 직접 해낸 경험(Mastery Experience): 자기효능감을 만드는 가장 강한 원천
  • 대리 경험(Vicarious Experience): 타인이 성공하는 걸 직접 보는 것도 일부 효과가 있음
  • 언어적 설득(Verbal Persuasion): 칭찬·격려는 효과가 가장 약함
요약: 공구함이 열리는 걸 보며 자란 아이는 고장을 퍼즐로 보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내적통제소재, 드라이버를 먼저 드는 이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차를 뜯을 때 즐거워서 하는 편은 아닙니다. 번거롭고 짜증스럽습니다. 그런데 공임비 청구서를 보면 그게 더 짜증스럽습니다. 결국 공구를 드는 건 그 둘을 비교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같은 문제가 또 생겼을 때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입니다.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Julian Rotter)는 이를 내적통제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내적통제소재란 '내 행동이 결과를 바꾼다'는 믿음으로, 이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더 오래 붙들고, 스트레스에 덜 무너지며, 우울에도 덜 빠진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나라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반대로 '어차피 내가 해도 안 된다'는 외적통제소재(External Locus of Control)가 강한 사람은 고장 앞에서 몸이 먼저 멈춥니다.

세탁기를 직접 고쳐본 사람은 그 순간 내적통제소재를 손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내 손이 결과를 바꿨다'는 증거가 하나 더 쌓이는 거니까요. 저 역시 차 부품을 갈아끼우고 나면 거창한 성취감보다는 조용한 확인 같은 게 남습니다. 이 일은 내가 손댈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 그게 쌓이면 다음에도 일단 뜯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직접 써봤는데 고치는 사람과 못 고치는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손재주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유튜브 영상 하나면 부품 이름부터 교체 순서까지 다 나옵니다. 차이는 단 하나, '일단 뜯어봤느냐'는 첫 시도의 유무였습니다.

요약: 내적통제소재는 '내 손이 결과를 바꾼다'는 믿음이며, 직접 수리한 경험이 이 믿음을 매번 손으로 확인해 준다.

 

모호함 내성, 뜯기 전에 답을 몰라도 뜯는 사람

뜯기 전에 이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 압니까? 아닙니다. 저도 차 보닛 열기 전에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냥 뜯어보면 뭔가 보일 거라는 것만 알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뜯어보면 뭔가 보입니다. 물이 새는 자리, 빠진 나사, 낡은 패킹.

이걸 심리학에서는 모호함 내성(Ambiguity Tolerance)이라고 부릅니다. 모호함 내성이란 답을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답을 찾을 때까지 그 불확실한 상태를 버티는 능력입니다. 이게 낮은 사람은 확신이 없으면 얼어붙거나 즉시 전문가에게 넘겨버립니다. 확신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포기의 이유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뜯어봐서 모르겠으면 그때 기사를 부르면 됩니다. 잃은 건 30분이고, 얻은 건 그 물건 구조를 조금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다음번엔 그 30분이 5분이 됩니다. 반면 처음부터 기사를 부르면 그 30분도 없는 대신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다음에도 부르고 그다음에도 부릅니다. 시도가 공짜라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처음에는 작은데, 10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기와 가스는 예외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그 선은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고쳐본 사람일수록 어디까지가 자기 선인지 정확히 알고, 그 선에서는 망설임 없이 전문가를 부릅니다. 직접 고치는 일이 아파트나 집을 임대하는 분이라면 보일러 공기 빼기, 수전 교체, 기초 전기 수리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그 선을 아는 것 때문입니다. 선을 모르면 아무것도 못 하거나, 아무 데나 손을 댑니다.

요약: 모호함 내성이 있는 사람은 답을 모른 채로 뜯고, 그 시도가 쌓여 10년 후 완전히 다른 능력이 된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재주가 없어도 직접 고칠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손재주는 나중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튜브 영상 하나 보고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수도꼭지 패킹 교체 같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면, 한 번 해보는 것 자체가 그다음 시도를 훨씬 쉽게 만들어 줍니다.

 

Q. 고치다가 더 망가뜨리면 어떻게 하나요?

A. 저도 그런 적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경험이 더 많이 남습니다. 왜 망가졌는지 이해하게 되고, 다음에는 그 실수를 안 합니다. 처음에는 비용이 더 들어도 시도의 값은 첫 번째가 제일 비싸고 그 뒤로는 계속 싸집니다.

 

Q. 전기나 가스도 직접 고치는 게 낫나요?

A. 이건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합니다. 전기와 가스는 직접 수리하면 안 됩니다. 고쳐본 사람일수록 이 선을 더 정확하게 압니다. 뜯어봐서 한계를 아는 사람이 뜯어본 적 없는 사람보다 오히려 전문가를 부르는 타이밍을 더 잘 잡습니다.

 

Q. 직접 고치는 게 실제로 돈이 절약되나요?

A. 단기로 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부품값이 출장비보다 더 들기도 하고, 시간도 분명히 들어갑니다. 그런데 10년 단위로 보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같은 문제가 두 번째 생겼을 때 5분이면 끝나고, 쓸 만한 물건을 버리지 않고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누적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아버지는 요즘 연세가 많으셔서 공구함을 예전만큼 자주 열지는 않으십니다. 그래도 웬만한 건 여전히 직접 하십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고장이 나면 고치는 게 디폴트값인 집에서 자란 사람은, 삶의 다른 문제 앞에서도 같은 자세로 접근하게 됩니다. 일단 뜯어보자. 뭐가 문제인지 보자. 안 되면 그때 도움을 구하자.

인생이 요행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작은 경험과 노력의 선순환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는 것. 저는 아직 로또를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집에는 큰 공구함이 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같은 말입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쌓인 멀쩡한 가구들을 볼 때마다, 고장 앞에서 먼저 버리는 사람과 먼저 뜯는 사람의 차이가 결국 얼마나 커지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참고: https://youtu.be/7U6lV_uzy2k?si=KAR9pbdUOTsfIn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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