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보다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사회에 더 큰 해를 끼친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의외였습니다. 연쇄살인범 이미지가 강한 사이코패스가 더 위험한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주변을 돌아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지인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서 특히 그걸 느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잘난 사람만 된다는 편견
제 지인의 남편이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입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스트란 자기애가 병적으로 과잉된 성격 유형으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막연하게 "잘생기고 잘나가는 사람들 얘기겠지"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 남편은 어릴 때부터 혼 한 번 나지 않고 자랐다고 했습니다. 뭘 해도 "최고다, 잘했다" 소리만 들으며 컸고, 본인도 자기가 워낙 잘나서 혼날 일이 없었다고 자랑처럼 말했다고요. 군대 갔을 때 부산이 멈추는 줄 알았다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는데, 휴가 나와서 부산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걸 보고 진짜로 충격받았다고 했다는 부분에서는 저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단순히 자존감이 높은 것과 구분해야 합니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힘인데, 나르시시즘은 내면의 공허함을 외부 과시로 채우려는 방어 기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어겨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며 당당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지적으로 반박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단단하게 자기 서사를 강화하더라고요.
나르시시스트가 되려면 내세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외모든 학벌이든 경제력이든, 어릴 때부터 칭찬받을 만한 재료가 있을 때 그것을 중심으로 자기 내면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르시시즘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격 유형은 일반인보다는 엘리트 집단에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처: 미국정신의학회(APA)
그렇다고 "나도 잘났으면 나르시시스트가 됐을 텐데"라고 부러워할 일은 전혀 아닙니다. 제 지인이 살아보니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이었다고 했을 때, 그 말 한마디에 일상의 피로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됐습니다.
- 나르시시스트는 외모·학벌 등 내세울 것이 있을 때 형성되는 경향이 있음
-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은 다른 개념: 전자는 자기 수용, 후자는 공허함을 과시로 채우는 방어 기제
- 약속을 어겨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핵심 특징 중 하나
- 논리적 반박보다 자기 서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음
권위주의적 성격과 감정조절, 조종보다 중요한 것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빌런 3인방으로 꼽히는 권위주의적 성격자(authoritarian personality)는 우리 주변에서 사실 가장 흔합니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강자 앞에서는 복종하고 약자 앞에서는 군림하려는 강압적 성향이 굳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소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성격이 형성되는 뿌리는 무력감(helplessness)입니다. 여기서 무력감이란 어린 시절 폭력적인 환경이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내면 깊이 쌓이는 심리적 무기력 상태를 말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폭력을 막을 수 없기에 그 고통을 견디는 방식으로 힘에 대한 집착을 키우게 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들었을 때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왜 반복적으로 가해를 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사이코패스보다 사회적으로 더 위험한 이유는 조직 내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는 대인관계 능력이 너무 낮아서 중간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반면 권위주의적 성격자는 달라붙어 치고 올라가는 능력이 있고, 그 과정에서 힘을 얻으면 그것을 과시하는 데 쾌감을 느낍니다. 역사 속에서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의 수장들이 이 유형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한편 요즘 다크심리학 책들이 유독 많이 팔리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제가 직접 그런 책들을 몇 권 살펴봤는데, "침묵의 기술"이나 "인간 조종법" 같은 내용들이 협상이나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쓸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한 친구 앞에서, 또는 직장 상사 앞에서 아무 데나 꺼냈다가는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훨씬 많더라고요. 기술을 외워서 쏘는 것과 상황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 조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조종이 통하는 경우는 공포, 폭력, 물질적 보상 같은 강력한 조건이 붙을 때입니다. 그 외의 조건 없이 기술만으로 사람을 조종한다는 건 환상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제 경험상 조종을 당하는 사람들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절을 못 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거나 하는 자기 내면의 취약점 때문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감정 조절과 관련해서도 오해가 많습니다. "감정을 끊어라"는 식의 조언은 심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크게 기분(mood)과 격정(passion)으로 나눕니다. 기분은 강도는 약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감정 상태이고, 격정은 강렬하지만 짧게 폭발하는 형태입니다. 기분은 살아 있는 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격정 상태에서 이성적 통제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에서 기분이 안 좋아서 꺼내는 말과 뚜껑이 열렸을 때 폭발하는 말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자주 묻는 질문
Q.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나요?
A. 진단과 성향은 구별해야 합니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꽤 많지만, 실제로 나르시시즘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약속을 어겨도 죄책감이 없고, 타인의 감정에 지속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며, 모든 서사를 자기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Q. 권위주의적 성격자는 치료가 되나요?
A. 핵심 원인이 어린 시절 쌓인 무력감이기 때문에, 그 내면의 상처를 다루는 심리치료가 필요합니다. 성인기에 형성되는 경우는 드물고, 어릴 때 지지적인 어른이 곁에 있어 무력감이 깊이 자리 잡지 않았다면 권위주의적 성격자로 굳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변화가 가능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습니다.
Q. 다크심리학 책들, 읽을 가치가 있나요?
A. 협상이나 비즈니스처럼 처음 보는 상대와 밀고 당기는 상황에서는 부분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 인간관계에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자신이 왜 조종당하기 쉬운지, 내 내면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더 실질적인 접근입니다.
Q.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 권위주의적 성격자 중 제일 조심해야 할 유형은?
A. 개인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성격자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이코패스는 대인관계 능력이 낮아 조직 내에서 위로 올라가기 어렵고, 피해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반면 권위주의적 성격자는 조직에서 정점까지 올라갈 수 있고, 권력을 쥐었을 때 그 피해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인구 비례로도 가장 많은 유형입니다.
결론
지인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제 주변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 하나입니다. 이상한 사람을 피하는 기술보다, 내가 왜 이상한 사람에게 끌리거나 당하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종을 당할 때 조종 기술이 뛰어난 상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거절을 못 하는 나, 인정받고 싶은 나, 관계를 잃을까봐 두려운 나를 먼저 직면해야 합니다.
권위주의적 성격, 나르시시시즘, 사이코패스 같은 심리병리(psychopathology) 개념을 아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심리병리란 정신 건강 측면에서 정상 범주를 벗어난 심리적 상태나 패턴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미운 사람마다 "사이코패스 아니야?"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정작 진짜 문제를 흐리게 만듭니다. 빌런 3인방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대부분의 문제는 그보다 훨씬 평범한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오징어 게임 안에서 살아남는 기술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게임 자체의 규칙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는 것. 그게 제가 요즘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질문입니다.